구시가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는 슈테판성당(Stephansdom)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의 교회인데 첨탑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37m로 사원의 탑으로는 세계 3번째 높이이다. 이 성당은 12세기 중엽에 완성되었는데 길이 65m, 넓이 35m의 십자가형의 성당 지붕은 선명한 청색과 금색 타일로 모자이크 되어 있다. 지하에는 오스트리아 황제들의 내장을 넣어 둔 항아리와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카타콤브가 있다. 이 성당에서 모짜르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합스부르그 왕가가 거처했던 호프부르그궁전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지어진 구 왕궁과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건조된 신 왕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 왕궁에는 레오폴드 1세가 카를로네에게 명해서 건조한 레오폴드 궁전과 요제프 1세의 왕후 아말리아의 성이었던 부르크가 있으며, 또 요세프 1세의 거실과 서재가 위층에 있다. 구 왕궁의 일부는 현재도 연방정부의 외무부에서 사용하고 있어 26개의 방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왕실의 갖가지 비품, 고블란 직물로 된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궁전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궁전의 한 모퉁이에 있는 승마학교는 가장 고도의 테크닉이라 불리는 스페인식 마술을 보여준다.
음악의 도시 빈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도나우 운하 연안에 있는 한적한 공원, 시립공원(Stadt Park)있다. 빈 시에서 운영하는 큰 공원으로 이곳 시민들의 휴양소이다. 여름철 밤이면 7시부터 11시까지 요한 슈트라우스 관현악단이 요한 슈트라우스 동상 앞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비엔나왈츠를 연주하며 그 음악에 맞추어 일반 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잡고 나와서 비엔나 왈츠를 추는데 밤9시가 되면 약 30분 동안 빈 시의 지정 댄스들이 정장을 하고 나와 시범 왈츠를 춘다. 이는 가히 빈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범 왈츠는 빈 시민의 왈츠에 대한 지도와 유지, 보급을 위해 끊임없이 매일 계속되는 것으로 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다. 이 공원의 남동쪽 숲에 바이올린을 켜는 왈츠왕 요한 슈트라우스의 동상이 있으며 남쪽에 펼쳐진 공원에는 베토벤상이 서 있고, 그 밖에도 많은 음악가의 동상이 있다. 부근에 콘체르트 하우스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거대한 중앙묘지(Zentralfriedhof)에는 슈트라우스 부자와 브람스, 슈베르트, 프란츠 본 수페, 베토벤, 쉰베르크, 모짜르트 등 음악가들의 묘비가 있다. 빈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많은 유명 음악가들을 기념하는 동상과 기념관 등이 빈 곳곳에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모짜르트 기념관(Mozart Memorial)이다. 잘쯔부르크에서 태어나 1781년에 빈으로 이사온 모짜르트는 거처를 11번이나 옮겼는데 그 중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이 곳 '피가로 하우스'이다. 이 집에서 모짜르트가 빈에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시절 그의 아내, 아들과 함께 3년동안 살았는데 이곳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작곡되었다. 이 집 2층 전체는 전시실로 모짜르트가 사용하던 피아노,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피가로 하우스에는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의 초상도 걸려있는데 모짜르트는 이 곳에서 하이든, 베토벤 등과도 교류했다. 모짜르트가 마지막 살던 곳은 현재 슈테플백화점 건물의 6층, 한쪽에 있는데 살림이 어려워지자 추운 겨울에 장작 살 돈이 없어서 추위를 이기려고 아내를 붙잡고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빈 제 4구에는 모짜르트 광장이 있고 조그만 광장에 있는 분수가 마적의 분수이며 성 마르크스 묘지에는 모짜르트의 묘비가 있으나 잘 알려진 대로 가 무덤이다.
18세기 후반 비엔나고전파를 대표하며 많은 명작을 남긴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당시 최고의 인기있는 작곡가였는데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동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아주 조그만 마을, 로라우(하이든의 생가와 기념비가 있음)에서 태어나 헝가리에 국경을 접하는 아이젠슈타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빈으로 왔다. 하이든의 집은 하이든이 1793년부터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하이든이 죽은 후에 경매에 붙여져 한 음악 거래상의 집이 되었었으나 1904년 빈 시의회가 이 집을 사서 정식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이 곳에서 하이든은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하였고 하이든이 쓰던 지휘봉과 <천지창조>의 초판 악보, 피아노 등의 유품과 그의 데드 마스크가 있고, 브람스의 방도 있다. 1809년 나폴레옹이 빈을 침입하자 하이든은 이 방에서 자신이 작곡한 오스트리아 국가를 피아노로 세번 연주하더니 그 며칠 뒤에 숨졌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마리아 힐프 교회 앞에는 1887년에 세워진 하이든의 화강암 석상이 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생을 마감했으므로 생가와 숨을 거둔 곳이 기념관으로 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생가는 빈 제 9구에 있는데 2층 기념관에 슈베르트의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초상화(원화는 빈 역사 박물관), 슈베르트가 사용하던 악보와 악기, 안경등이 있으며 끝쪽에는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를 상징하는 숭어를 안고 있는 하얀 나신의 소녀상이 있다. 슈베르트가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은 곳은 케텐브뤼켄가쎄 6번지3층이다. 슈베르트는 숨을 거둔 후, 유언대로 베토벤의 곁에 묻혔는데 처음에는 뵈링 묘지에 함께 묻혔다가 현재 빈 묘지 특별 구역으로 이장되서 베토벤 옆에 자리잡고 있다.
베토벤 이후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는 브람스 역시 빈에서 활동을 하다 빈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빈 시절 살던 집은(현 칼스플라츠) 1907년에 허물어 졌으므로 브람스를 위한 기념관으로 따로 정해진 곳은 없고 그가 생전에 존경하던 하이든의 기념관 안에 방 하나가 브람스 기념실로 되어있으며 브람스의 무덤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의 기념상이 빈 중앙 묘지에 있다. 브람스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진 곳은 그가 죽은 집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카를스 교회로, 교회앞에 분수와 넓은 광장이 있는데 그 광장 한쪽 끝에는 브람스의 호화로운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브람스는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의 원숙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고전주의적 조형감을 중시한 독일음악의 전통을 계승한 사람이기도 하다.
빈 태생의 작곡가 쇤베르그의 기념관은 뫼들링에 있는데 이 곳에서 그가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살았다. 이 건물은 개축하여 1999에 오픈하였는데 이 곳에는 쇤베르그 작품세계와 생활이 잘 전시되어 있다. 쇤베르그는 제자 A. 베르크 및 A. 베베른과 함께 <신 비엔나악파> 또는 <제 2 차비엔나악파>를 형성하였으며, 특히 <12음 음악>이라는 새로운 기법의 음악을 창조하여 20세기 예술음악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치정권 시, 히틀러에 쫓겨 1933년 미국으로 건너가 41년에 미국시민권을 얻었으며 1936년 이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나폴레옹에 바친 오드(1942)》 《바르샤바의 생존자(1947)》 등 반나치즘 작품을 썼다.
'여행지정보 > 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리아] 밀라노 UNA Hotel Lodi (0) | 2010.05.27 |
---|---|
[영국] 런던 St Giles Hotel Feltham Heathrow (0) | 2010.05.27 |
[스페인] LA MOTILLA HOTEL SEVILLE (0) | 2010.05.13 |
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 따라잡기 (0) | 2010.05.13 |
[헝가리] 부다페스트 (0) | 2010.05.11 |
[스페인] The Auditorium Madrid Hotel (0) | 2010.05.11 |
[스페인] HOTEL LAYOS GOLF TOLEDO (0) | 2010.05.11 |
[포르투갈] Hotel Costa da Caparica Lisbon (0) | 2010.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