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뛰어난 신학자를 뽑는다면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꼽힐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도미니쿠스 학파의 가장 뛰어난 학자였다.로마교회 신학의 기초를 완성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세운 토마스학교(Thomistic School)는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건재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들,‘존재와 본질에 관하여’‘자연의 원리에 관하여’ ‘센텐티아 주석’ 그리고 ‘신학총론’ 등은 그 양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그는 ‘교회의 박사’‘천사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베네딕트 수도원 몬테카시노에서 수학한 후 나폴리에서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접했다.1244년 도미니코 교단에 들어가면서 그 이듬해 파리에서 알베르트 마구누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의 사상적 경향은 중세의 ‘주지주의(Intellectualism)’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중세의 스콜라 철학 중에서도 온건한 실재론 ‘보편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안에 존재한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즉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이성과 계시,철학과 신학의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조화였다.아퀴나스는 철학을 이성에 의해서 획득할 수 있는 진리를 다루는 학문,신학은 계시된 진리를 다루는 학문으로 구분했다.그러나 이것은 각기 다른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같은 사물(things)이 자연적 이성의 빛에서 고찰될 수 있을 때는 철학으로 취급되는 것이고 그것이 신적 계시의 빛으로 고찰될 때는 신학으로 취급된다”고 아퀴나스는 말했다.그에게는 이성과 계시가 모두 신적이었던 것이다.계시는 이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완성시킨다.동시에 계시된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 입증되며 확실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제일원인’ 또는 ‘제일동인’이라고 했는데,여기서 ‘원인’ 또는 ‘동인’은 인과관계적 의미가 아니며 ‘제일’이라는 말도 양적 시간개념에서 쓴 것이 아니다.그 말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창조적 근거’라는 그의 신념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쓰인 것이다.하나님은 ‘존재 자체(Being Itself)’인 것이다.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존재의 완전이 발견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최고의 선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앎(intellect)’은 단순한 지적 능력이나 사고력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인 신의 첫 자질이다.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객관과 주관이 동시적이다.즉 하나님은 자신을 알고 세계를 안다.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 ‘앎’이 있고 우리 인간도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조화를 이루는 그의 사상체계는 ‘자연과 은혜’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여기서 말하는 ‘자연(nature)’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본성’을 의미한다.그의 은총론은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르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form)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은혜는 애초 하나님 안에서 있는 잠재적(가능태) 성질이지만 그 대상인 인간과 피조물에게는 현실적인 실현(현실태)으로 나타난다.이 은혜의 효과는 영혼을 치유하고 선을 실현하고 지속시키려는 의욕과 영광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자연과 은혜는 모순되는 두 개념이 아니다.자연은 초자연에서 완성이 되는데 이 초자연이 은혜이다.아퀴나스가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자연과 은혜의 관계는 그의 윤리적 교훈에서도 나타난다.그의 윤리학에는 ‘이성적 하부구조’와 ‘신학적 상부구조’라는 것이 있다.전자는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네가지 덕목,즉 용기 절제 지혜 그리고 이것들을 포괄하는 정의가 포함된다.인간은 이것을 행하므로 ‘자연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적 행복’이란 단순히 좋고 기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본성’의 완성을 의미한다.그러나 기독교의 덕목,즉 믿음 소망 사랑은 초자연적이다.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이것이 그에게 있는 자연 윤리와 영적 윤리의 결합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적 목적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완성시키는 것이었다.아퀴나스는 ‘앎’이 곧 인간 본질의 완성이요 윤리적 완결체라고 말했다.인간은 ‘앎’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앎’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믿음은 여기에 작용한다.
종교개혁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긴 했으나 그것은 그의 깊은 종교적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할 수 있다.파울 틸리히도 “루터는 자기와 칼뱅의 예정사상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는 이성과 신앙,자연과 은혜가 갈등 관계가 아니라 조화 그 자체였다. 사상과 신학,세계의 관계가 나누어지고 대립하는 오늘 우리 시대에 그의 사상을 다시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약력
△한신대 캐나다 맥길 대학 졸업(Ph.d) △한신대 총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동북아신학교협의회 총무 및 회장 △현 한신대 명예교수
주재용 박사(한신대 명예교수)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뛰어난 신학자를 뽑는다면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꼽힐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도미니쿠스 학파의 가장 뛰어난 학자였다.로마교회 신학의 기초를 완성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세운 토마스학교(Thomistic School)는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건재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들,‘존재와 본질에 관하여’‘자연의 원리에 관하여’ ‘센텐티아 주석’ 그리고 ‘신학총론’ 등은 그 양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그는 ‘교회의 박사’‘천사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베네딕트 수도원 몬테카시노에서 수학한 후 나폴리에서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접했다.1244년 도미니코 교단에 들어가면서 그 이듬해 파리에서 알베르트 마구누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의 사상적 경향은 중세의 ‘주지주의(Intellectualism)’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중세의 스콜라 철학 중에서도 온건한 실재론 ‘보편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안에 존재한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즉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이성과 계시,철학과 신학의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조화였다.아퀴나스는 철학을 이성에 의해서 획득할 수 있는 진리를 다루는 학문,신학은 계시된 진리를 다루는 학문으로 구분했다.그러나 이것은 각기 다른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같은 사물(things)이 자연적 이성의 빛에서 고찰될 수 있을 때는 철학으로 취급되는 것이고 그것이 신적 계시의 빛으로 고찰될 때는 신학으로 취급된다”고 아퀴나스는 말했다.그에게는 이성과 계시가 모두 신적이었던 것이다.계시는 이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완성시킨다.동시에 계시된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 입증되며 확실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제일원인’ 또는 ‘제일동인’이라고 했는데,여기서 ‘원인’ 또는 ‘동인’은 인과관계적 의미가 아니며 ‘제일’이라는 말도 양적 시간개념에서 쓴 것이 아니다.그 말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창조적 근거’라는 그의 신념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쓰인 것이다.하나님은 ‘존재 자체(Being Itself)’인 것이다.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존재의 완전이 발견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최고의 선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앎(intellect)’은 단순한 지적 능력이나 사고력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인 신의 첫 자질이다.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객관과 주관이 동시적이다.즉 하나님은 자신을 알고 세계를 안다.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 ‘앎’이 있고 우리 인간도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조화를 이루는 그의 사상체계는 ‘자연과 은혜’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여기서 말하는 ‘자연(nature)’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본성’을 의미한다.그의 은총론은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르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form)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은혜는 애초 하나님 안에서 있는 잠재적(가능태) 성질이지만 그 대상인 인간과 피조물에게는 현실적인 실현(현실태)으로 나타난다.이 은혜의 효과는 영혼을 치유하고 선을 실현하고 지속시키려는 의욕과 영광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자연과 은혜는 모순되는 두 개념이 아니다.자연은 초자연에서 완성이 되는데 이 초자연이 은혜이다.아퀴나스가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자연과 은혜의 관계는 그의 윤리적 교훈에서도 나타난다.그의 윤리학에는 ‘이성적 하부구조’와 ‘신학적 상부구조’라는 것이 있다.전자는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네가지 덕목,즉 용기 절제 지혜 그리고 이것들을 포괄하는 정의가 포함된다.인간은 이것을 행하므로 ‘자연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적 행복’이란 단순히 좋고 기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본성’의 완성을 의미한다.그러나 기독교의 덕목,즉 믿음 소망 사랑은 초자연적이다.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이것이 그에게 있는 자연 윤리와 영적 윤리의 결합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적 목적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완성시키는 것이었다.아퀴나스는 ‘앎’이 곧 인간 본질의 완성이요 윤리적 완결체라고 말했다.인간은 ‘앎’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앎’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믿음은 여기에 작용한다.
종교개혁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긴 했으나 그것은 그의 깊은 종교적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할 수 있다.파울 틸리히도 “루터는 자기와 칼뱅의 예정사상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는 이성과 신앙,자연과 은혜가 갈등 관계가 아니라 조화 그 자체였다. 사상과 신학,세계의 관계가 나누어지고 대립하는 오늘 우리 시대에 그의 사상을 다시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약력
△한신대 캐나다 맥길 대학 졸업(Ph.d) △한신대 총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동북아신학교협의회 총무 및 회장 △현 한신대 명예교수
주재용 박사(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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