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 베를린(Berlin).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천년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베를린은 800년 밖에 안되는 비교적 젊은 도시이나 독일의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베를린의 역사는 13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퀠른(Coelln)과 베를린이라는 두 작은 도시가 합병하게 되고 1451년 프리드리히2세 후작이 이를 자신의 영지로 삼았다. 그 후 프리드리히3세가 1701년 스스로 '프로이센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1세'라 칭하고 베를린을 수도로 삼았다. 프로이센 즉, 독일제국이 성립된 이후, 1871년에 베를린이 독일제국의 공식수도가 되어 인구만 백만명이 넘는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도시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고 한 도시가 4등분되어 4강(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48년 소련과 미국의 대립으로 마침내 동 서로 분단되었고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장벽이 세워져 동족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분단된 서독일의 수도는 본(Bonn)으로 변경되었다.
그로부터 약 30년후인 1990년 독일의 통일(1990)로 베를린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미리 철거되었으며 베를린은 다시 통일독일정부의 수도가 되었고 연방국회 역시1999년 4월 19 새로 건축된 국회건물로 옮겨가 현재에 이른다.
브란덴부르거토어(문)은 단 하나 남은 성문으로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분단된 독일의 장벽이 연결되어 있어 분단독일의 기점 역활밖에 못했었다가. 통일된, 1989년 12월 22일 다시 개방되었다. 오랜 수리끝에 2002년 10월 3일 통독기념일에 매우 거창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 성문은 처음 1734년 프리드리히1세에 의해 세워진 옛성문을 훗날 프리드리히2세가 제국통일을 이룬 후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성문의 모양을 따 지금의 크기(높이 26m, 넓이 65,5m, 폭 11m)로 확장공사하였다. 성문 위에는 큐바드리가(4두마차)상이 있다. 독일제국이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 그리고 프랑스(1870~1871)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승전기념탑(Siegessaeule)은 1873년 건축가인 하인리히 슈트라흐(Heinrich Schuthrach)가 설계하였으며 기념탑위 승리의 여신상 빅토리아는 독일제국의 자유와 통일을 상징하는데 몸 전신이 금으로 도금되어 있어 독일에서 가장 값 비싼 옷을 입은 여인이라 불러진다.
베를린 시가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 쿠어퓌어스텐담(일명 쿠담)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 Wilhelm Gedaechnis-Kirche)는 문예부흥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신낭만주의 풍으로 1891~1895년에 건축되었다. 원래 이 교회는 독일 제2제국의 통일과 유대교, 프랑스 후고텐족 신교도 등과 기독교적인 통합을 이끈 빌헬름대제의 성덕을 추앙하기 위해 구관교회의 중앙제단에 그의 이름까지 새겨 놓았었는데 2차 대전 때인 1953년 폭격을 받아 심하게 파손되었다. 불에 타 검은 폐허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 바로 그 옆에 신관예배당을 지었는데 이는 두번씩이나 세계 대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의 속죄, 평화와 화해의 깊은 의미와 더 나아가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후세에 전하겠다는 기독교적인 뜻이 담겨져 있으며 독일 국민에게는 대전후 재건의지의 뜻이 담겨져 있는 베를린의 명물 중 하나이다.
샤를롯텐궁(Schloss Charlottenburg)은 베를린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으로 바로크양식으로 1695~1699년 프리드리히3세의 부인 소피 샤를롯테를 위한 여름궁전으로 지어졌다. 이 후,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왕국의 왕이 되자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 따 확장하였다. 이 궁전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많이 파손되었는데 1950년대에 이르러 복구작업을 시작하였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은 여행객들 뿐 아니라 베를린시민들도 즐겨찾는 명소이다.
포츠담광장(Potsdamer Platz)은 예전부터 국제철도역이나 황제호텔등으로 베를린의 가장 중심지였고 교통의 요지였으나 독일이 분단된 이후, 거리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인적이 끊기고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통독이후, 전 포츠담거리를 한 쪽으로 하고 새로운 포츠담거리가 생성되었는데 1992~1998년 다임러 크라이슬러회사 건물이 들어선 이래 전혀 새로운 현대식 빌딩들로 신상업지구를 이루고 뮤지컬극장과 수 많은 호텔, 식당, 상점으로 매우 번화하고 활동적인 시가지역이 되었다.
브란덴부르그 성문을 지나 슐로스다리까지 베를린홈볼트대학, 국립가극장, 독일역사박물관이 있으며 다리를 건너면 박물관의 섬이 있는 데, 이 곳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5개의 박물관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1830년에 쉰켈(Schinkel)의 설계로 세워진 옛박물관(Alte Museum)에는 많은 골동품, 예술품과 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박물관(Neue Museum)은 1842~1859년에 슈퇼러(Friedrich August Stueler)에 의해 설계된 박물관으로 많은 예술품으로 전시자리가 부족하게 된 옛(구)박물관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하나의 박물관, 국립미술관(Nationalgalerie) 역시 슈퇼러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이다.
바로크식의 돔이 얹혀 있는 보데박물관(Bodemuseum)은 파피루스컬렉션 등 방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의 섬에서 가장 신 건축물인 페르가몬박물관(Pergamonmuseum)은 1930년에 완공되었다. 이 곳에는 페르가몬 (고대 그리스)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데 바빌론의 '이슈타르문'이나 '행진거리(Prozessionsstrasse)' 고대로마의'밀레투스의 문' 등이 특히 유명하다.
니콜라이지구(Nikolaiviertel)는 이른 바, 베를린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중세풍의 좁은 거리와 식당들과 카페가 많이 모여 있어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다. 제2차 대전 전에는 니콜라이교회를 둘러싸고 상점과 수예품공장 등으로 활기찬 지역이였으며 클라이스트(Kleist), 하우프트만(Hauptmann), 카사노바(Casanova)나 렛싱(Lessing) 등 유명한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이 지역 역시 1944년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베를린시 750주년을 기념하여 1981~1987년에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면으로도 매우 큰 동물원(Zoologischer Garten)이 베를린에 있는데 1844년에 개원되었고 2차 세계대전시 폭격으로 동물의 90%가 죽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그외 베를린의 새로운 명소로는 신축된 국회와 수상관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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