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지정보/유럽

[영국] 옥스포드 세인트매리교회


 

01234




존 웨슬리의 흔적을 좆아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하늘 한편에 노을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종착지로 선택한 곳은 세인트매리교회(St. Mary the Virgin). 

옥스퍼드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회는 웨슬리가 설교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교회로 들어서는 입구 윗쪽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서있다. 교회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5시였지만,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30분 전까지 신청을 해야했기에 기념품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 한쪽 구석에 있는 전망대 가는 길, 윤기를 내고 있는 8백년 된 돌계단은 나선형의 원을 그리며 컴컴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매듭진 밧줄을 붙잡고, 한사람만 허락하는 좁다란 127개의 돌계단을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머리 위로 새어드는 빛줄기가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시선을 활짝 열어주는 탁 트인 전망, 남서쪽엔 크라이스트처치의 톰타워가 보이고, 서쪽에 링컨칼리지가... 아직 방문하지 못한 고딕양식의 건물들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그려내고 있다.

탑 꼭대기를 돌아가며 만들어 놓은 좁은 골을 따라 동서남북 살피며 지나온 길을 손가락으로 더듬다보니 종일 걸어 다녔던 옥스퍼드 구석구석이 깔끔하게 정돈되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엔 유난히 눈에 띄는 돔형의건물이 하나있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의 중앙청 지붕을 생각나게 하는 래드클리프 카메라(Redcliffe camera)가 그것이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들리안 도서관에 속한 건물인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1714년부터 문을 열었다고 하니 독서광인 웨슬리도 가끔은 이곳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이 도서관은 영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의 사본을 보관하고 있고 한다. 그래서 옥스퍼드 학생들은 주로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원하는 자료를 구하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계단을 내려와 상점으로 다시 들어오니 진열된 기념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옥스퍼드 전경을 그림으로 묘사한 포스터 맵이 유난히 마음을 끈다. 전망대에 올라갈 때 미리 사두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망대의 감동이 있기에 지도에 손이 갔다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일 것 같다.

옥스퍼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이 계단을 오르기 바란다. 자세한 관찰을 원한다면 기념품점에서 지도를 미리 장만하는 것이 좋다. 또한 10여 페이지 남짓의 새인트매리교회 가이드 책자에는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동서남북 전경에 건물이름을 넣은 사진이 담겨있어 편리하다.

나무를 보았다면, 한발 물러나 숲 전체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분주한 우리 인생길에 가끔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012



세인트메리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존 웨슬리에 대한 흔적은 암갈색 설교단이 전부였다. 사람 키 정도 높이에 설치된 이곳의 설교단에서 웨슬리가 설교를 했다는데, 지금있는 설교단도 1827년에 교체된 것이라니, 전망대를 오르지 않을 바에야 굳이 이곳을 들를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당시를 마음에 그려보니, 이곳이야 말로 웨슬리의 일생에 있어 소중한 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존 웨슬리는 66년이라는 공식사역기간동안 무려 4만회의 설교를 했고 하는데, 간단히 계산해 보아도 하루 평균 2회 이상의 설교를 한 셈이다. 그의 무수한 설교 가운데 가히 명설교로 꼽히는 몇 편의 설교가 바로 이곳, 세인트메리교회에서 교수와 학생들, 졸업생들 앞에서 선포됐다.

특히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Salvation by Faith)이라는 설교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구원의 믿음에 대한 부족함을 절감하고 낙심했던 웨슬리가 고민 끝에 찾은 해답이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1738년 3월 4일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설교를 그만 두어라. 너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누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라는 마음의 소리에 가책을 느끼며 설교를 그만 두어야 할지 아닌지에 대해 뵐러에게 묻는다. 뵐러는 의기소침해 있는 웨슬리에게 대답한다.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라고.

이후 웨슬리의 관심은 믿음과 구원의 관계에 집중되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난 5월 24일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강한 확신과 회심을 경험한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난 웨슬리는 에베소서 2장 8절(‘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을 본문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해 공식적(?)으로 선포한다. 이후 그의 몇몇 설교는 대학에서 논란거리가 됐다.

웨슬리의 8월 24일자 일기를 펼쳐보면, ‘성 마리아 교회에서 설교했다. 아마도 이것이 최후였을 것이다..... 나는 나의 소신을 유감없이 피력했다. 대학의 소사가 와서 부총장께서 나의 설교노트를 보기 원한다고 하기에 하나님의 현명하신 섭리를 찬미하면서 지체 없이 노트를 보냈다’라며, 자신의 설교에 대한 주위의 비판적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웨슬리는 대학교회에서 여러차례 설교할 기회를 얻었을 만큼 뛰어난 설교자였다. 하지만 이번 설교는 오직 자신들의 의를 내세우고, 형식적이고 믿음 없는 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참석했던 교수들은 이를 문제 삼아 웨슬리가 대학교회의 설교단에 서지 못하게 한다.

무엇이 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면 웨슬리의 대표적인 설교 53편을 묶어 펴낸 [표준설교집]을 열어보시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90프로 크리스찬’ ‘신앙에 의한 의인’... 존 웨슬리가 성서에서 찾아낸 하늘가는 길을 한번쯤 진지하게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