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스(Samos) 섬에는 비행장이 있어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바로 갈 수 있고 배를 이용할 경우에는 아테네에서 북쪽 바티항까지 18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터키 에베소의 쿠사다시 항구에서는 하루 2회 운항하는 페리선을 이용하면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밧모 섬 일주를 마친 후 스카라 항구에서 오전 10시에 사모스 섬으로 가는 배를 이용했다. 밧모 섬을 떠난 배는 2시간 정도 걸려 사모스 섬 남쪽 피타고리온 항구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부두에서 바라본 피타고리온 항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남쪽에서 오는 배는 남쪽 항구인 피타고리온항에 정박하고 북쪽으로 가는 배는 북쪽 항구인 바티항에서 출발한다.
사모스 섬은 터키 트로길라온곶에서 1.6㎞ 지점에 있으며 에게해 동남부 이오니아 제도 중의 한 섬으로 에베소 남서쪽,밀레도의 북서쪽에 있다. 이 섬은 동서의 길이가 43㎞,가장 넓은 곳은 24㎞ 정도이다. 흰 모래 해안과 마을,그리고 고기잡이 항구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곳을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사모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섬의 주요 도시들은 바울 시대에는 자유시였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 기오 섬을 떠나서 사모스 섬에 들렀다가 다음날 밀레도로 갔다(행 20:15). 특히 내가 도착한 피타고리온 항구는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그래서 이 항구 부두에는 삼각형 형태의 피타고라스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항구 옆에는 해수욕장,언덕 위에는 교회와 옛 성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기원전 11세기께 이오니아인들로 이들은 일찍부터 무역에 나서서 기원전 620년께에는 지브롤터 해협 밖에까지 진출하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폴리크라테스라의 통치로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문학 예술 철학 등 다방면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가 건설되고 항구와 헤라 신전도 건조되었는데 피타고리온 항구 산중턱에는 당시 바위를 파서 건설한 수로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아테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헬레니즘 시대에는 남쪽에 있는 로도스 섬(행 21:1)의 번영과 함께 쇠퇴하였다. 그후 기원전 133년 오랜 기간 로마의 속주로 있다가 15세기 이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923년에 로잔 조약에 의해 그리스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모스 섬의 동남쪽 해안에는 평야지대가 있어 포도 올리브 목화 등이 생산되는데 이곳의 포도는 예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했으며 오늘날에도 이곳의 포도주는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섬지역치고는 나무가 많아 조선업이 발달했는데 빌린 차로 섬을 가로지르자 지금도 산중턱에서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큰 도시는 북쪽에 있는 바티항으로 천혜의 입지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해변에는 역사박물관이 있는 공공도서관을 비롯해 은행 여행사 영국?독일?프랑스영사관들이 들어서 있고 일렬로 늘어선 쇼핑점과 카페,레스토랑들이 아름다운 해안과 잘 어우려져 바티항의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4만여명이 거주하는 이 섬의 중앙에는 해발 1433m나 되는 케르케테우스 산이 있다.
나는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보고 먼저 피타고리온 항구에서 가까운 헤라 신전을 찾았다. 본래 이곳은 사모스 섬의 예배장소였으며 문화적으로 자랑할 만한 건축물이었다. 이곳의 신전은 사모스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기원전 2000년초에 헤라 신전은 투박한 헤라상을 가진 단순한 은신처에 불과했으나 기원전 8세기에는 길이 100ft의 헤라 신전이 건축되었고 이후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던 기원전 7세기에는 더욱 화려한 신전이 재건축되었다. 그러다가 100년후인 기원전 6세기께에는 고대 그리스 신전 중 가장 큰 신전이 되었다. 그러다가 독재자 폴리크라테스가 지배할 당시에는 길이가 108.7m나 되는 이오니아식의 장엄한 신전이 재건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헤라 신전에는 기둥 1개만 외롭게 우뚝 솟아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부서지고 무너진 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신전에서는 기원전 6세기 중엽 사모스파의 작품인 여성 입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원주를 연상시키는 원통형의 직립상으로 오른손은 겨드랑이에 붙이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세로로 섬세하게 주름이 새겨진 키톤(chitoon:그리스에서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남녀가 함께 입었던 옷)을 입고 있다. 이 여성 직립 입상 중에서 잘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현재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케라뮤에스 봉납의 부인상’이다.
이러한 엄청한 규모의 헤라 신전이 있었던 사모스 섬에 오늘날 도시 뿐 아니라 산중턱과 꼭대기까지 쥬도코스 피기 수도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이 이곳에 최초로 뿌린 복음의 씨앗 때문이었다.
사모스 섬은 터키 트로길라온곶에서 1.6㎞ 지점에 있으며 에게해 동남부 이오니아 제도 중의 한 섬으로 에베소 남서쪽,밀레도의 북서쪽에 있다. 이 섬은 동서의 길이가 43㎞,가장 넓은 곳은 24㎞ 정도이다. 흰 모래 해안과 마을,그리고 고기잡이 항구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곳을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사모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섬의 주요 도시들은 바울 시대에는 자유시였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 기오 섬을 떠나서 사모스 섬에 들렀다가 다음날 밀레도로 갔다(행 20:15). 특히 내가 도착한 피타고리온 항구는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그래서 이 항구 부두에는 삼각형 형태의 피타고라스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항구 옆에는 해수욕장,언덕 위에는 교회와 옛 성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기원전 11세기께 이오니아인들로 이들은 일찍부터 무역에 나서서 기원전 620년께에는 지브롤터 해협 밖에까지 진출하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폴리크라테스라의 통치로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문학 예술 철학 등 다방면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가 건설되고 항구와 헤라 신전도 건조되었는데 피타고리온 항구 산중턱에는 당시 바위를 파서 건설한 수로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아테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헬레니즘 시대에는 남쪽에 있는 로도스 섬(행 21:1)의 번영과 함께 쇠퇴하였다. 그후 기원전 133년 오랜 기간 로마의 속주로 있다가 15세기 이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923년에 로잔 조약에 의해 그리스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모스 섬의 동남쪽 해안에는 평야지대가 있어 포도 올리브 목화 등이 생산되는데 이곳의 포도는 예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했으며 오늘날에도 이곳의 포도주는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섬지역치고는 나무가 많아 조선업이 발달했는데 빌린 차로 섬을 가로지르자 지금도 산중턱에서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큰 도시는 북쪽에 있는 바티항으로 천혜의 입지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해변에는 역사박물관이 있는 공공도서관을 비롯해 은행 여행사 영국?독일?프랑스영사관들이 들어서 있고 일렬로 늘어선 쇼핑점과 카페,레스토랑들이 아름다운 해안과 잘 어우려져 바티항의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4만여명이 거주하는 이 섬의 중앙에는 해발 1433m나 되는 케르케테우스 산이 있다.
나는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보고 먼저 피타고리온 항구에서 가까운 헤라 신전을 찾았다. 본래 이곳은 사모스 섬의 예배장소였으며 문화적으로 자랑할 만한 건축물이었다. 이곳의 신전은 사모스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기원전 2000년초에 헤라 신전은 투박한 헤라상을 가진 단순한 은신처에 불과했으나 기원전 8세기에는 길이 100ft의 헤라 신전이 건축되었고 이후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던 기원전 7세기에는 더욱 화려한 신전이 재건축되었다. 그러다가 100년후인 기원전 6세기께에는 고대 그리스 신전 중 가장 큰 신전이 되었다. 그러다가 독재자 폴리크라테스가 지배할 당시에는 길이가 108.7m나 되는 이오니아식의 장엄한 신전이 재건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헤라 신전에는 기둥 1개만 외롭게 우뚝 솟아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부서지고 무너진 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신전에서는 기원전 6세기 중엽 사모스파의 작품인 여성 입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원주를 연상시키는 원통형의 직립상으로 오른손은 겨드랑이에 붙이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세로로 섬세하게 주름이 새겨진 키톤(chitoon:그리스에서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남녀가 함께 입었던 옷)을 입고 있다. 이 여성 직립 입상 중에서 잘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현재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케라뮤에스 봉납의 부인상’이다.
이러한 엄청한 규모의 헤라 신전이 있었던 사모스 섬에 오늘날 도시 뿐 아니라 산중턱과 꼭대기까지 쥬도코스 피기 수도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이 이곳에 최초로 뿌린 복음의 씨앗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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