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
첸탕강[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시후호[西湖]를 끼고 있어 쑤저우[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隋)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行在)라고 하다가 임안(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元代)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상하이[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 번영은 상하이에 빼앗겼다. 오늘날 성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녹차(綠茶)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룽징차[龍井茶]의 산지이며, 전통적인 직물공업을 바탕으로 근대적 설비에 의한 견(絹) ·면직포 ·염색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교외의 새로운 공업지대에는 1957년에 철강공장이 세워져 공작기계 ·동력기계 ·보일러 ·베어링 ·전선 관련공장이 들어섰다. 중국 정권 성립 후 황폐해진 시후호를 5년 동안 정비하고 호반의 별장 등을 정리, 대공원을 건설하였다.
첸탕강[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시후호[西湖]를 끼고 있어 쑤저우[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隋)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行在)라고 하다가 임안(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元代)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상하이[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 번영은 상하이에 빼앗겼다. 오늘날 성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녹차(綠茶)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룽징차[龍井茶]의 산지이며, 전통적인 직물공업을 바탕으로 근대적 설비에 의한 견(絹) ·면직포 ·염색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교외의 새로운 공업지대에는 1957년에 철강공장이 세워져 공작기계 ·동력기계 ·보일러 ·베어링 ·전선 관련공장이 들어섰다. 중국 정권 성립 후 황폐해진 시후호를 5년 동안 정비하고 호반의 별장 등을 정리, 대공원을 건설하였다.
시후호 [西湖(서호), Xi Hu]
면적 5.66㎢, 둘레 15km, 평균수심 1.5m, 최대수심 2.8m이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서쪽에 있다. 한(漢)나라 때 밍성호[明聖湖]라고 불렀으나 당(唐)나라 때부터는 도시 서쪽에 있다고 하여 시호[西湖]라고 하였다. 원래는 항저우만[抗州灣]과 연결된 해만(海灣)이었으나 첸탕강[錢塘江]에서 흐르는 토사(土沙)에 의해 해만이 막혀서 된 석호(潟湖)이다.
호수 주위에 난고봉[南高峰]·베이고봉[北高峰]·위취안산[玉泉山] 등이 있으며, 남·북·서의 3면이 구릉으로 둘러싸이고, 호수 북쪽에 구산[孤山]이라고 부르는 작은 섬이 있다. 그 작은 섬에서 동쪽으로 백거이(白居易)가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백제(白堤)가 뻗고, 또 호수 서쪽을 소동파(蘇東坡)가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소제(蘇堤)가 남북으로 뻗어 현재 산책로가 되어 있는데, 이것에 의해 와이시호[外西湖]·리시호[里西湖]· 허우시호[后西湖]·샤오난호[小南湖]와 웨호[岳湖]로 구획된다.
호수에는 3개의 섬이 있는데, 샤오잉저우섬[小瀛洲島]이 제일 큰 섬이다. 그 섬에는 북송(北宋) 때 세운 좌표 3석탑인 싼탄인웨[三潭印月]가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3석탑은 명(明)나라 때 재건된 탑이며, 탑과의 거리는 62m, 탑의 높이는 2m이다.
한편 호수 주변의 산중에는 송대(宋代)의 명장 악비(岳飛)의 묘소 및 링인사[靈隱寺]·톈주사[天竺寺]·류허탑[六和塔] 등 유서 깊은 명승고적이 산재한다. 또 호수 안의 구산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소장한 문란각(文瀾閣)이 있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호수 안에는 섬·제방과 연안의 구릉 및 명승고적이 있다.
면적 5.66㎢, 둘레 15km, 평균수심 1.5m, 최대수심 2.8m이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서쪽에 있다. 한(漢)나라 때 밍성호[明聖湖]라고 불렀으나 당(唐)나라 때부터는 도시 서쪽에 있다고 하여 시호[西湖]라고 하였다. 원래는 항저우만[抗州灣]과 연결된 해만(海灣)이었으나 첸탕강[錢塘江]에서 흐르는 토사(土沙)에 의해 해만이 막혀서 된 석호(潟湖)이다.
호수 주위에 난고봉[南高峰]·베이고봉[北高峰]·위취안산[玉泉山] 등이 있으며, 남·북·서의 3면이 구릉으로 둘러싸이고, 호수 북쪽에 구산[孤山]이라고 부르는 작은 섬이 있다. 그 작은 섬에서 동쪽으로 백거이(白居易)가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백제(白堤)가 뻗고, 또 호수 서쪽을 소동파(蘇東坡)가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소제(蘇堤)가 남북으로 뻗어 현재 산책로가 되어 있는데, 이것에 의해 와이시호[外西湖]·리시호[里西湖]· 허우시호[后西湖]·샤오난호[小南湖]와 웨호[岳湖]로 구획된다.
호수에는 3개의 섬이 있는데, 샤오잉저우섬[小瀛洲島]이 제일 큰 섬이다. 그 섬에는 북송(北宋) 때 세운 좌표 3석탑인 싼탄인웨[三潭印月]가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3석탑은 명(明)나라 때 재건된 탑이며, 탑과의 거리는 62m, 탑의 높이는 2m이다.
한편 호수 주변의 산중에는 송대(宋代)의 명장 악비(岳飛)의 묘소 및 링인사[靈隱寺]·톈주사[天竺寺]·류허탑[六和塔] 등 유서 깊은 명승고적이 산재한다. 또 호수 안의 구산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소장한 문란각(文瀾閣)이 있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호수 안에는 섬·제방과 연안의 구릉 및 명승고적이 있다.
항저우 육화탑 [杭州 六和塔(항주육화탑)]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시[杭州市]의 첸탕강[錢塘江] 부근의 웨룬산[月輪山]에 있는 전목탑(塼木塔).
970년 북송(北宋) 태조(太祖) 때 첸탕강의 역류를 방지하기를 기원하며 세운 탑이다. 처음에는 9층 탑으로 건립하고, 탑신(塔身)에 탑등(塔燈)을 설치하여 첸탕강에서 야간에 항행하는 선박들의 표지등(標識燈) 역할을 하였다. 1121년 북송 휘종(徽宗) 때 전란으로 거의 전부가 파손되었으며, 1153년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 재건사업에 착수하여 1163년 효종(孝宗) 때 완공되었다. 재건된 탑은 7층으로 줄어들었고, 높이도 59.89m로 원래보다 낮아졌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개수작업이 이루어졌지만 남송 때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육화탑은 외형은 13층이지만 내부는 7층이다. 8각형의 누각식(樓閣式) 전목탑으로 탑신은 벽돌로 쌓았고, 바깥처마는 목조이다. 탑신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어 맨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각 층에는 모두 4각형의 탑실(塔室)이 있다. 탑실 천장은 2층의 내쌓기(corbel) 구조로 장식하고 두공(斗拱)으로 받치게 하였다. 탑의 벽에는 인물과 화훼, 조충어수(鳥獸蟲魚) 등 다양한 도안이 새겨져 있는데, 그 형상이 살아 있는 듯 생동한다. 탑 밖으로 목조 처마와 회랑이 널찍하고 길게 펼쳐져 있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다.
대한민국임시정부항저우구지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저우 유적지 기념관 안내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대 조선반도의 비통한 역사를 만들었고 독립구국운동은 한국 애국지사와 중국인민들이 공동으로 엮은 감격적이고 눈물겨운 역사의 한페이지로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성립된 후 중국을 주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줄곧 중국 정부와 중국인민들의 유력한 원조를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의 지시에 따라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들을 폭사시킨 홍커우의거를 계기로 저쟝으로 전이하여 "항저우시기"를 시작하였다.
독립투사들은 항저우 창성로 후비예촌(長生路 湖近村), 쉐쓰로 쓰신광, 칭타이 제 2여관(淸泰第二旅社) 등 곳에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든가, 독립당기관지인 <진광(震光)> 을 발행했다든가 등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해체위기에 직면했을 때 김구와 그의 동지들의 노력으로 임시정부는 지속되었고, 종국적으로 항일광복투쟁의 최후승리를 거두었다.
항저우시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과 항저우와의 인연을 중요시하여 거액의 투자를 들여 창성로 후비옌촌에 위치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舊址)를 바탕으로 면적을 3배 확장시켜 중한 양국인민의 정감을 이어주는 이 기념관을 만들었다. 기념관은 4개홀로 구성되었으며 실물, 사진, 그림, 비디오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시해 놓았다.
상하이시기 : 1919 ~ 1932
저장시기 : 1932 ~ 1937
이동시기 : 1937 ~ 1940
충칭시기 : 1940 ~ 1945
중국항주시 장생로 55호 中國 杭州市 長生路 55호
전화 : 0086 571 87064301, 87064305
팩스 : 0086 571 87064309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시[杭州市]의 첸탕강[錢塘江] 부근의 웨룬산[月輪山]에 있는 전목탑(塼木塔).
970년 북송(北宋) 태조(太祖) 때 첸탕강의 역류를 방지하기를 기원하며 세운 탑이다. 처음에는 9층 탑으로 건립하고, 탑신(塔身)에 탑등(塔燈)을 설치하여 첸탕강에서 야간에 항행하는 선박들의 표지등(標識燈) 역할을 하였다. 1121년 북송 휘종(徽宗) 때 전란으로 거의 전부가 파손되었으며, 1153년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 재건사업에 착수하여 1163년 효종(孝宗) 때 완공되었다. 재건된 탑은 7층으로 줄어들었고, 높이도 59.89m로 원래보다 낮아졌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개수작업이 이루어졌지만 남송 때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육화탑은 외형은 13층이지만 내부는 7층이다. 8각형의 누각식(樓閣式) 전목탑으로 탑신은 벽돌로 쌓았고, 바깥처마는 목조이다. 탑신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어 맨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각 층에는 모두 4각형의 탑실(塔室)이 있다. 탑실 천장은 2층의 내쌓기(corbel) 구조로 장식하고 두공(斗拱)으로 받치게 하였다. 탑의 벽에는 인물과 화훼, 조충어수(鳥獸蟲魚) 등 다양한 도안이 새겨져 있는데, 그 형상이 살아 있는 듯 생동한다. 탑 밖으로 목조 처마와 회랑이 널찍하고 길게 펼쳐져 있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다.
대한민국임시정부항저우구지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저우 유적지 기념관 안내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대 조선반도의 비통한 역사를 만들었고 독립구국운동은 한국 애국지사와 중국인민들이 공동으로 엮은 감격적이고 눈물겨운 역사의 한페이지로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성립된 후 중국을 주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줄곧 중국 정부와 중국인민들의 유력한 원조를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의 지시에 따라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들을 폭사시킨 홍커우의거를 계기로 저쟝으로 전이하여 "항저우시기"를 시작하였다.
독립투사들은 항저우 창성로 후비예촌(長生路 湖近村), 쉐쓰로 쓰신광, 칭타이 제 2여관(淸泰第二旅社) 등 곳에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든가, 독립당기관지인 <진광(震光)> 을 발행했다든가 등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해체위기에 직면했을 때 김구와 그의 동지들의 노력으로 임시정부는 지속되었고, 종국적으로 항일광복투쟁의 최후승리를 거두었다.
항저우시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과 항저우와의 인연을 중요시하여 거액의 투자를 들여 창성로 후비옌촌에 위치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舊址)를 바탕으로 면적을 3배 확장시켜 중한 양국인민의 정감을 이어주는 이 기념관을 만들었다. 기념관은 4개홀로 구성되었으며 실물, 사진, 그림, 비디오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시해 놓았다.
상하이시기 : 1919 ~ 1932
저장시기 : 1932 ~ 1937
이동시기 : 1937 ~ 1940
충칭시기 : 1940 ~ 1945
중국항주시 장생로 55호 中國 杭州市 長生路 55호
전화 : 0086 571 87064301, 87064305
팩스 : 0086 571 8706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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