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마의 성지 순례 = 첸나이에서 유명한 마리나 비치에 도착하자 도마 기념 교회가 보였다. 첸나이의 도마 기념 교회는 1504년에 포르투갈인이 건립한 것을 1893년에 재건축했다. 이탈리아 베드로 성당, 스페인 야고보 성당과 함께 예수님 제자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세 교회 중 하나다.
교회 옆에는 인도 선교의 역사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도마 순교 1900년을 기념해 인도 정부가 발행한 기념 우표 원본이 보존돼 있다. 기도 처소였던 작은 동굴에는 그의 기도 손자국이 남아 있다. 도마에게 식수를 제공했던 기적의 샘도 있다.
첸나이 남쪽 작은 언덕은 도마가 사형을 당한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도마의 뼛조각이 담긴 십자가와 순교할 당시의 상상도 등 많은 자료들이 보존돼 있었다. 현지 교계에 따르면 도마는 당시 첸나이를 다스리던 왕의 총애를 듬뿍 받아 궁전을 짓는 건설 책임자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경비의 일부를 빼돌려 빈민을 구제한 것이 발각돼 참수형을 당했다.
◇ "믿지 못하겠소" =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한복음 20장 25절)
신학자들은 도마를 가리켜 '의심 많은 제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질문과 의심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질문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것이다. 누군들 그 당시에 주님께서 걸어가실 십자가 길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을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도마에겐 장점이 있다. 사실을 보고 깨닫게 되었을 때 즉각 무릎을 꿇고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도마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소식을 듣고도 믿음을 갖지 못하자 여드레 후 나타나신 예수님으로부터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요한복음 20장 29절)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의심많았던 도마는 다른 어떤 제자보다 멀리 '땅끝까지' 가서 선교를 하고 끝내 순교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 삶의 모든 것을 드린 대표적인 사례다. 도마의 경우는 누구나 성령에 의해 변화할 수 있고, 부활을 자기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마는 20여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한 뒤 AD 72년에 순교했다.
◇ 주님께 엎드린 도마 … 인도 선교 원동력으로 = '신들의 나라' 인도 12억 인구 중 기독교는 불교나 자이나교 시크교 등과 함께 소수 종교 중 하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도인들은 도마가 전한 복음을 접하면서 참된 신인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다. 인도의 복음화율은 현재 5% 정도. 3만2000여개의 기독교단체가 성경학교를 설립하고 어린이 1000만명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정성민 인도 선교사는 "인도 선교는 우상과의 전쟁일 정도로 상황이 치열하고 열악하다"고 했다.
"인도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원시와 문명 모든 것을 삼키는 곳이지요. 사람이 많은 탓에 몇백명 사망해도 언론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또 반기독교 폭동이 잦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도마의 질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열정이었고 그의 의심은 믿음을 갖고자 하는 정직한 삶의 몸부림이었다. 2009년 부활절. 무관심과 냉소의 시대에 오히려 뜨거운 열정과 타는 목마름으로 진리를 묻고 의심하는 도마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인도 Chennai역에서 내려서 Local Train을 타고 8정거장을 가면 St. Thomas Station 이 나온다. 거기서 내려 Auto Rikshaw 를 타고 조금 가면 성 도마 산이 나온다.
인도에 세워진 도마 사도의 전승
ㄱ. 말라바르 전승
사도 도마에 대한 말라바르 크리스천과 이웃 비크리스천 들에게도 구전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알려진 전승이다. 말라바르 또는 인도 전승의 내용은 사도 도마가 바다를 통해 52년경 크랜가노르에 상륙했다. 크랜가노르, 빨랴유르, 퀼론과 또 다른 몇몇 곳에서 몇몇 상위 카스트인 힌두 가족을 개종시키고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면서 코로만델 해안을 방문했다. 거기를 지나 중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와 이전에 그가 개종시켰던 지도자 가족들 사이에서 몇 지도자(목사)하에 말라바르 기독교( Christians of Malabar)를 조직하고 몇 개의 예배 장소를 세웠다. 그러고 나서 코로만달 해안으로 옮겨가다가 현재 성 도마 산으로 알려진 조그만 언덕에서 순교를 했다. 그의 시신은 밀라뽀르로 옮겨졌고 그가 지은 사원에 장사되었다. 이 전승에 따라 말라바르, 서아시아, 심지어 중국에서까지 밀라뽀르로 순례를 와서 무덤을 경배하고 있다.7)
ㄴ. 도마 행전(Acts of Thomas)
도마행전은 서구 전승으로 알려진 또 다른 전승을 다루고 있다. 서구 전승의 내용은 이렇다. “사도 도마는 잘 발달된 무역로를 따라서 1세기 중엽에 인도에 도착했다. 파르티아와 인도에 복음을 전했고 왕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복음을 영접했다. 인도에서 순교를 했고 거기서 장사지낸바 되었다. 후에 그의 유해는 서구(에뎃사)에 옮겨졌고 사람들은 존경과 경배를 표하고 있다.8) 도마행전은 3세기 중엽에 에뎃사에 있는 시리아어로 쓰여진 외경이다. 이것은 북인도 또는 파르티아의 왕이었던 군다포러스왕 제위 시절 인도의 사도 도마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ㄷ. 밀라뽀르 전승
이 전승은 몇 역사가들에 의해 인도인 또는 말라바르 전승과는 구분되어 다루어진다. ‘코르만달 전승’으로 알려진 밀라뽀르 전승은 포르투갈인에 의해 별도 전승으로서 더 유명하다. 이 전승에 따르면 사도 도마는 그의 말라바르 해안의 성공적인 사역 후 동부 해안쪽으로 가로지르며 복음을 전했다. 말라바르에서 처럼 개종자들, 특히 상위 카스트들의 개종이 있었다. 그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적대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다. 쫓기고 있던 그런 상황하에서 작은 언덕(The Little Mount)에 굴을 파고 거처를 삼았다. 그가 잡힐 무렵 굴의 지붕에 있던 구멍을 통하여 탈출해서 성 도마 언덕(St. Thomas Mount, 타밀어로 파랑기 말라이)의 정상에 자신이 지은 사원에 거처를 정했다. 추격자들은 거기서 사원 내부에 돌 십자가를 걸고 있는 그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후에 그의 추종자, 또는 제자들이 와서 그의 시신을 거두어 산 토메, 밀라뽀르에 있는 해변가에 장사지냈다. 이 전승의 옹호자들은 작은 언덕 동굴의 바위에 있는 손자국(발자국?), 도마 언덕(파랑기 말라이)에 있는 돌 십자가(페르시안 십자가), 밀라뽀르 산 토메 성당에 있는 무덤을 그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 세 장소가 인도 로마 카톨릭의 관할하에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출처- http://cafe.naver.co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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