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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아프리카

인류의 고향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가는 길이 한결 가까워졌다. 대한항공이 케냐 나이로비행 직항을 띄운 데 이어 에티오피아 항공도 지난 6월부터 서울~아디스아바바 직항을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뿔’ 근처에 위치한 두 나라까지의 비행 시간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슷해졌다. 덕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한국인도 크게 늘었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들 세렝게티 초원 ‘동물의 왕국’을 떠올리지만, 그 밖에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에티오피아가 그중 하나다. 시바 여왕의 3000년 왕국으로, 아프리카의 유일한 기독교(에티오피아 정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여러 고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 커피의 고향인 이곳에서 경험하는 커피 세리머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5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의 루시 화석5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의 루시 화석


아디스아바바 주민들 외모와 기후에 깜짝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면 우선 기후와 사람에 놀란다. 적도 바로 위의 나라지만 기온이 연평균 16~22도로 시원하고 쾌적하다. 사방은 짙은 녹색이다. 아프리카 땅이란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전국이 해발 2400m 안팎의 고원지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우리가 알던 흑인과 다르다. 짙은 갈색 피부에 입술이 얇고 코가 오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고대 시바 여왕과 이스라엘 솔로몬 왕 사이의 혼혈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먼저 할 일은 현생 인류의 원조인 ‘루시’를 만나는 것이다. 국립박물관에 가면 약 350만 년 전 최초 직립 보행인의 진품 유골화석을 볼 수 있다. 루시라는 이름은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드에서 유골이 발견되던 날 밤,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비틀스의 곡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립박물관에는 과거 에티오피아 황제들의 금관 등 유물도 소장돼 있다.

 

 

8 랄리벨라 암굴교회 안의 성직자. 9 아디스아바바의 트리니티 대성당.8 랄리벨라 암굴교회 안의 성직자. 9 아디스아바바의 트리니티 대성당.

 

 

다음으로 가볼 곳은 트리니티 대성당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교회에 들어서면 에티오피아 정교의 교세를 실감할 수 있다. 아름다운 유럽 스타일의 외관에 에티오피아의 독특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1942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물리친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성당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군 전사자 121명의 유해도 안치돼 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서방의 식민 통치를 받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1936년 이탈리아에 점령당했지만 치열한 항전으로 5년 만에 격퇴했다. 그만큼 강성했기에 한국전쟁에도 3500여명의 지상군을 파병했을 법하다. 자매결연 도시인 춘천시의 도움으로 건립된 한국전쟁 참전기념관도 가볼 만한 곳이다.

 

 

3 악숨의 오벨리스크 유적지. 4 커피 세리머니를 하는 여인.3 악숨의 오벨리스크 유적지. 4 커피 세리머니를 하는 여인.

 

문명의 요람 악숨 모세의 석판 있다는데 …

악숨은 고대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으로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 700㎞, 비행기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1~10세기 악숨제국의 문화 중심지였고 3~6세기에는 수도였다. 에디오피아인들이 기원전 10세기 시바 여왕의 왕궁터라고 믿는 곳에 가면 고대의 성채와 오벨리스크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오벨리스크는 1~4세기에 세워진 것들로 무려 130여 개나 된다. 높이 33m에 무게 50t이나 되는 것도 있다. 왕궁터 아래엔 시바 여왕의 목욕탕이란 곳도 있다. 폭 30m에 길이 100m 규모로 현재 저수지로 쓰이는데, 고고학자들은 사바 여왕 연대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악숨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성모 마리아 시온 성당이다. 모세의 십계명이 담긴 석판 원본이 궤에 담겨 보관돼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사람들은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가 이 성궤를 예루살렘에서 악숨으로 가져왔다고 믿고 있다. 실제 이곳에는 성궤보관소가 있고 성궤지기도 있지만 실물은 확인할 수 없다. 성당 안에는 양피지로 만든 700년 된 성경이 있는데 관광객들도 누구나 만져볼 수 있다.

 

 

 

 

 

2 랄리벨라의 성 기오르기스성당2 랄리벨라의 성 기오르기스성당

 

성지 랄리벨라 인간의 걸작품 암굴교회

다음 목적지는 11~13세기 자그왕조의 수도였던 중세 도시 랄리벨라다. 악숨과 함께 종교 성지로 꼽히는 이곳에 가면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걸작품인 석조 암굴교회를 만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1개의 석조 교회들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지하로 깎아 들어가 조각해 만들었다. 교회의 기둥과 지붕, 여러 방들이 하나의 바위였던 게 대부분이고, 몇 개 암석을 덧댄 것도 있다.

이슬람이 위세를 떨치던 12세기, 에티오피아 왕 랄리벨라는 예루살렘을 방문한 뒤 자신의 영토를 예루살렘처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슬람의 공격에 대비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화재의 위험도 없는 암굴교회를 짓기로 했다. 교회들은 12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대부분 보존이 잘돼 지금도 매년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다. 그중 메드하네알렘성당이 가장 큰데 가로 22m, 세로 33m, 높이 11m에 기둥이 32개나 된다. 이 모든 게 한덩어리의 바위였다니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아름답기로는 성 기오르기스성당이 제일이다. 암굴교회 중 가장 우수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너비와 깊이가 각각 12m인 이 교회는 붉은 화산암에서 풍겨 나오는 독특한 색채를 뽐낸다. 학자들은 이 교회를 짓는 데 무려 4만 명을 동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6 악숨 시온성당의 700년 된 양피지 성경. 7 곤도라의 파실리다스 궁전.6 악숨 시온성당의 700년 된 양피지 성경. 7 곤도라의 파실리다스 궁전.

 

궁전 도시 곤다르 황제의 사자 우리 그대로

곤다르는 에티오피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인 17~18세기 수도였다. 파실리다스 황제가 1636년 수도로 정한 이후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이 곳곳에 건설됐다. 곤다르의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파실리다스의 궁전은 영국 중세 아서왕의 궁궐에 비유해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그 옆에는 이야수 1세 황제가 세운 이야수 궁전이 자리 잡고 있다. 곤다르의 왕궁에는 황제들이 기르던 사자의 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왕궁의 한복판을 차지하며 왕실의 위엄과 정통성을 과시했던 상징물이다. 에티오피아의 역대 황제들은 스스로를 ‘유다의 사자’라고 칭했다고 한다.

 

타나호수 배 타고 600년 전 수도원 구경

곤다르 남쪽에는 거대한 타나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나일강의 지류인 청나일강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타나호수는 해발 1830m에 위치하며 폭이 60㎞, 길이는 70㎞나 된다. 호수의 물은 4개 줄기의 청나일폭포를 이뤄 나일강으로 흘러드는데 폭포 높이가 45m로 장관을 이룬다. 타나호수의 또 다른 볼거리는 호수 위 20여 개 섬에 지어진 수도원들이다. 섬의 수도원에는 실제 수도사들이 은거하는데 그 역사가 600년을 넘는다. 배를 타면 섬에 올라 수도원을 구경할 수 있다. 호수 변에는 쿠리프투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데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 구조를 현대식 건축물로 개량 설계한 럭셔리 방갈로들이 관광객을 맞는다.

커피의 고향 길에서 맛보는 원조 커피

에티오피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커피다. 커피의 발상지는 아디스아바바 서남쪽 짐마 인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야생 커피숲이 우거져 있는데 하루 이상을 육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이 찾기엔 부담스럽다. 하지만 젊은 배낭여행족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곳이다.

커피라는 말은 짐마 지역의 옛 지명인 ‘카파(Kaffa)’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3세기께 이 지역 목동들은 염소들이 야생의 빨간 열매를 먹으면 흥분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목동들도 호기심에 이 열매를 맛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에티오피아의 야생 커피 원두는 아라비아로 전파돼 ‘아라비카 커피’의 효시가 됐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꼭 체험해야 하는 게 커피 세리머니다. 여인이 화덕에 불을 지펴 작은 냄비에 커피 생원두를 직접 볶은 뒤 절구로 빻는다. 그 옆 호리병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린 뒤 소박한 탁자에 예를 갖춰 내놓는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리지만, 가격은 500원이면 충분하다. 여인의 정성이 담긴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인류의 고향이자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의 숨결에 영혼이 절로 맑아지는 것 같다.

악숨·랄리벨라·곤다르(에티오피아)=글·사진 김광기 기자

 

에티오피아 면적이 한반도의 5배, 인구 9400만의 큰 나라다. 국토 대부분이 해발 2000m 이상 고원지대다. 10~1월이 건기로 여행하기 좋다. 치안이 안정돼 테러 걱정이 거의 없다. 황열 예방접종과 말라리아 예방약을 여행 전에 꼭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온 다습하지 않아 현지인들은 이런 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이며 달러당 환율은 18.4다. 한국과 시차는 6시간.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직항(홍콩 경유)으로 14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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