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 반도는 6만2천 ㎢ 크기의 삼각형 모양의 대륙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리학적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남은 홍해, 동은 아카바만 (평균 깊이 1,850 ㎞). 서는 수에즈만 (평균 깊이 110 m), 북은 지중해로 둘러 쌓인 곳이다. 북부는 기후가 온화하며 평균 강우량 150㎜에 이르고, 비옥한 계곡과 오아시스가 많이 있는 남부는 평균 강우량이 60㎜ 정도이다.
현재 시나이 반도에는 25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약 60%가 아랍계열의 유목민인 베두윈 족이다. 이들 베두윈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좇아 물과 꼴을 찾아서 광야를 이동하고 있으며, 대추야자, 올리브, 귀리등을 재배하여, 식량과 가축들의 사료로 쓰기도 한다.
이들을 규제하는 법은 이집트 국법이라기 보다, 그들만의 부족법이다. 이들은 정착을 위한 농경이나 집을 짓지 않으며, 임시 거주처는 야자수잎 등으로 만들어 지는데 물론 지붕없는 구조로 지어진다. 엘 아이리쉬 지역이나 바란 오아시스 지역의 유목민들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반 유목민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시나이 반도의 여기저기에서 중동전의 전흔을 찾아볼 수 있는데, 수에즈 운하 근처의 높은 모래 둔덕들은 군용 참호를 만들었던 자리들이다. 이 지역의 관할권을 두고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집트와 터키가 다투었고, 중동전 과정에서는 이스라엘에 점령되기도 했다. 1982년 이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반환하였고, 1988년 이후로 이집트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타바의 힐튼 호텔은 이스라엘이 1970년대 후반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집트 영역 안에 있다. 시나이 반도의 개발은 1967년 3차 중동전 이후에 이스라엘이 점령하면서 구체화되어, 다합, 누에바, 샤름 엘 쉐이크 들에 정착촌을 건설하였고, 홍해변에 고속도로를 1971년에 완성 시켰다.
북부 시나이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시나이 반도 북단의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는 길로서, 이 길을 팔레스타인 길, 블레셋 길, 또는 바닷길 (Via Maris)이라고 한다. 또한 이길을 고대 이집트에서는 'Way of Horus'라고 하여 군용도로로 활용하였다.
이 길을 통하여 사람들의 이동, 사상의 전파, 생산물의 교환이 주로 이루어졌다. 고대에는 이집트와 동방의 나라들간에 긴밀한 접촉과 교류가 있었으며 시나이 반도가 그들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북부 시나이는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오가는 용병들의 중요한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 군대와 함께 페니키아 인들도 함께 이동하였다.
중부 시나이
메마른 자갈과 석회석의 고원 지대로, 기암괴석의 기묘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폭넓은 건조하천 (와디)이 발달해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와디 알아리쉬'로서 남북 길이가 200㎞를 넘는다.
기원전 16세기에 이집트 왕은 수르 광야 길 (성경 상의 '술 길' : 창 16:7)을 통해 현재의 이스마일리아 지역을 지나 브엘쉐바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이 길의 이름을 'Kings Highway'라고 불렀다. 또한 현재의 아흐마디 함디 터널을 지나서 타바(에일랏)을 지나가는 '미디안 길' 또는 '순례자의 길'이 있는데 무슬림들은 일평생에 한 번 이상은 성지 메카를 순례하도록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북부 아프리카의 무슬림 들이 이곳을 통하여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창 16:7)
남부 시나이
오마르(Omar)에 의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집트가 점령 당하던 636년에, 아랍 무슬림들은 바란 오아시스 지역에 많은 수의 건축물들을 지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다른 이들은 삶의 흔적들만 남기고 이곳을 떠나갔다. 성캐더린 수도원의 수백 명의 수도사들만이 시나이 반도의 기독교 중심지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십자군 전쟁 시기에 이곳은 다시 회복되었으나, 이 십자군은 살라딘에 의해 패퇴하였고, 살라딘은 파라오의 섬 (현 타바국경 근처)에 성채를 쌓아 올렸다. 16세기에 술탄 셀림 무라드(Sultan Selim Murad)는 수에즈와 아카바를 연결하는 '순례지의 길' 중간의 Tur 지역에 또다른 성을 쌓았다.
남부 시나이는 깊게 깍인 높은 화강암 산악을 이루고 있고, 와디 (건조천)의 경우는 통상 건조한 상태에 있으면서 간간이 내리는 빗물에 의하여 점점 더 패이고 있는 상태이다. 해발고도가 750 ~ 2500m 에 이르고 있다. 거대했던 화산 활동을 실감하게 해준다. 짙은 푸른색의 구리 탄소엽, 분홍색과 노랑, 회색의 화강암, 석회석, 남동관, 흑갈색의 점토 퇴적물, 이회암 등이 띠 모양을 이루고 있는 산악들을 보게 된다.
많은 골짜기들이 간간이 울창한 초목을 이루고 있기도 한다. 샘들과 자연 우물들이 야자수와 위성류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 곡을 지나면서 압력이 가중되면서 급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는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온 수도사들의 은둔 생활이 이미 4세기 중엽에 시작되기도 하였다.
역사 속의 시나이
불모의 땅이면서도 인류 역사상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은 드믈다. 고대 이집트 제국이나 알렉산더의 아프리카 원정도, 이슬람의 아프리카 확산도, 이 시나이 반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시나이 반도의 통로는 50개 군단이 진군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폭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 역사 속에서 시나이는 19왕조 시기부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요르단의 페트라 문명을 만들어낸 나바트인들이 그들의 왕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 (기원전 2세기 ~ 기원 후 1세기)에 이 시나이에 거주하였다.
시나이 반도와 성경의 관계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및 애굽 여행과 관계된 창세기 12장 이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가데스와 술(Shur) 사이에 거주하였는데 이것은 현재의 수에즈 운하를 중심으로 한 남북 지역을 말한다. 요셉이 미디안 상인을 통하여 애굽으로 팔려 갔었고, 야곱이 그 가족들과 이집트로 들어왔던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세의 도주처로서 (출 2:15, 미디안 땅), 하나님의 출애굽 소명을 받은 시내산 사건 (출 3~4장) 으로, 아합왕의 박해를 피해 도망왔던 엘리야의 은신처 (왕상 19:1 ~14 :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로서,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헤롯의 박해를 피해 피난오던 길목이기도 하다. 사도바울의 10년 간의 성경연구 장소 (갈 1:17, 아라비아. 갈 4:24 ~25)로서도 언급되고 있다.
시나이 반도는 코멜리우스 팔마 (Conelius Palma) 때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것은 나바트 왕국과 페트라가 로마에 굴복되던 AD 107년의 일이다. 이후 3세기 로마의 데오도시우스 황제 (249 ~251)때의 대대적인 박해를 피해 수천의 망명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출애굽 경로를 쫒아 하나님의 산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출애굽 전통을 되살리고 수도원 운동을 재개하였다. 이 결과물들은 현재의 바란 오아시스 지역과 해안 지역에 흩어져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1948년 ~ 1949년 에 1차 , 1956년에 2차 , 1967년에 3차 , 1973년 10월 4차에 걸친 전쟁의 격전지로서도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있다가 1979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조인한 이후에 이집트에 반환하였다. 반환은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1982년 4월에 타바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반환되었고, 1989년에는 타바도 반환되었다. 현재 타바 국경지역에는 일부의 유엔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시나이 반도의 길
오늘날 시나이 반도 지역이나 시내산으로 가는 일반적인 코스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수에즈 운하 (아흐마드 함디 터널) 밑을 통과하여 시나이 반도 서편 홍해 변을 좇아서 가는 길과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누웨바' 길을 지나서 시내산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시나이 반도 북단으로 가는 길은 'El Shallufa' 지역에서 배로 건너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출애굽 여정은 '이스마일리아' 부근에서 수에즈 운하를 배로 건너 이곳에서 남쪽으로 홍해를 끼고 내려오는 코스이다. 그러나 시간상 많은 제약을 받고 있기에 현재의 순례여정에서는 활용하고 있지 않다.
※ 술 길 (창 16:7 : 수르로 가는 길)
에돔길 (왕하 3 : 에돔광야 길)
홍해길 (신 1:40)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 (신 1:19)
Via Maris 라고도 불린다.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 사용되었다. 이 길을 따라 가나안 고대 성읍들이 형성되었다. 외국의 사신들과 대상, 원정군들이 통행하였다. 길르앗, 므깃도 등은 대표적인 도시이다. 이사야 9장 1절 에는 '해변 길'로, 출애굽 13장 17절 에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언급되고 있다. 이집트 서기관 호리의 편지에는 '호루스의 길'로 언급되고 있다. 이 길은 해변길의 남쪽 부분으로 이집트 군대의 북진로였다. 전략적 요충지, 요새들이 줄지어 수축되어 있었고, 대상들과 군대의 통행로였으며, 중간역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물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요새도시로는 '라피아'와 '라반' , '사루헨', '벧 에글라임', '가자'등이 있다.
요단강을 남북으로 달리고 있는 길 (민 20:17, 21:22) '대로'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길의 북부는 '바산 길' (민 21:33)로 국제적 교역로였고, 유목민의 대상들이 사용하던 길로 가장 고대의 원정은 창세기 14장의 아브라함이다. 이 길의 요지로는 '바산', '길르앗', '모압 고원', '세일', '에돔'과 아카바 만의 '엘랏' (민 20:19)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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