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이름은 라이스(관 18:29)로, BC 18세기경 기록된 이집트의 저주 문서나 마리 문서에 가나안의 주요도시의 하나로 언급되어 있다. 이 곳이 전통적인 가나안의 도시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헬몬산의 눈이 녹은 물이 석회암의 내부로 스며들었다가 산기슭인 단에서 맑은 샘으로 솟아나며 요르단강의 원천을 이루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곳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풍부한 물과 주변의 기름진 경작지 덕분에 근처에서 가장 중심적인 도시세력으로 성장했다. BC 1900년경 처음으로 성벽이 건설되었으며, 이때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넓이는 6만여 평 정도였다.
단 지파는 원래 아얄론 평야를 중심으로 한 쉐펠라와 지중해 연안 지역을 분배받았지만(여호 19:40~46), 이미 그곳에 정착해 있던 블레셋 민족에 밀려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가나안의 전통적인 도시였던 라이스를 정복한 후, 도시 이름을 자신들의 지파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개명하였다. 성서에 의하면 이곳은 남북 왕국이 분열된 후 여로보암에 의해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장소로 부각되어 있다. 또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시대에는 시리아의 벤하닷 왕이 이 곳을 침공하여 파괴시키기도 하였다(열왕 상 15:20). 이 곳은 1966년 이래로 예루살렘의 히브리 유니온 대학의 A.비란 교수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축적된 발굴 결과를 통하여 단의 주거역사를 시대별로 보면 BC 2700년경을 기점으로 한 초기청동기시대부터 중기청동기시대, 후기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이스라엘시대, 고대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단의 유적의 대부분은 여로보암 이후 이스라엘시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웅장한 규모의 성문과 성벽, 제의장소 등을 들 수 있다.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은 정치적으로 남유대와 분리된 북이스라엘의 종교적 독립을 위해 남쪽 경계인 베델과 북쪽 경계인 단에 예루살렘 성전에 필적하는 금송아지 성전을 건축하였다(열왕 상 12:28~29). 그런데 여로보암이 새로운 종교를 도입하기 위해 단에 성전을 건설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단 성전에 금송아지 숭배를 유입시켰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요한 것은 단의 발굴을 통하여 성전의 존재가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발굴자에 의해 제의장소(Culitic Precinct)라 명명된 이 지역에서는 저장용 항아리, 일곱 심지 등잔, 분향로 등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1993년, 단의 유적발굴 도중 아람어로 기록된 비문 조각이 발견되었다. 현무암으로 된 이 조각은 원래는 폭 50cm, 높이 1m 크기의 비석으로 추정되며, 비문은 BC 9세기 전반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아람어 비문에는 성서 외의 자료로서는 최초로 다윗 가문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서 다윗왕조의 역사성이 확고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유적발굴 결과,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단의 제의장소에는 계속해서 성소(聖所)가 건설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특히 '단에 있는 신에게'라는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된 비문을 통하여 이 곳이 성서에 나오는 단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4세기 이후부터 단은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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