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들에 대한 소중한 발견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하층민들의 정착은 탐구되지 않은 상태고, 대부분은 현재 시내의 아래에 묻혀있다. 따라서 하마단의 고대 역사는(기원전 1000년 이전)은 여전히 탐구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들에 따르면 엑바타나는 기원전 650년 전후에 메디아 왕조의 화려한 수도로서 정해졌다. 엑바타나의 웅장한 성벽은 7겹으로 되어있었다고 하고, 안쪽 두 개의 벽은 금과 은으로 코팅되었고, 바깥쪽에 있는 것은 고대아테네처럼 길었다고 한다. 하지만 1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인들에게 정복되었고, 키로스 왕은 이를 그의 여름궁정으로 이용하였다. 고대 페르시아 말로 하그마타네(만남의 장소)라고 알려진 이 도시는 바빌론으로 통하는 ‘신성한 길’을 조정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주요 통상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원전 521년에 메디아 인들은 돌아온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다리우스에 의해 추방되었고, 그는 그의 업적을 ‘신성한 길’의 옆의 비소툰과 간지나메의 돌에 새겼다.
아람가에 부알리 시나 Aramgah-e Buali Sina
부알리 시나 무덤의 타워는 하마단의 상징이다. 신기하게도 현대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고르잔 주변의 부알리 생전에 지어진 1000년 된 건물인 곤바데 카버스 타워의 모델이 되었다. 서쪽의 전망이 가장 좋다. 아비센나 메모라빌리아 박물관이나 그의 무덤과 작은 도서관을 꼭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입장료를 쓸 필요는 없다. 안쪽에는 작은 책방과 허브로 된 치료제 진열대가 있다.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부와 번영의 세월을 보낸 후, 엑바타나와 하마단은 기원후 7세기 중반에 아랍의 침략 이후 쇠퇴해져 갔지만, 12세기 말에 60년간 셀전크스의 지배 아래 지역 수도가 되었다. 몽고인들(1220)과 타머래인 인들(1386)의 유린에도 불구하고, 하마단은 18세기 터키의 침략 이후에야 비로소 큰 쇠락을 경험하게 된다. 19세기 중반에 타격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1929년에 독일 기술자인 칼 프라이쉬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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