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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터키

[터키] 하타이, 안타캬, 수리아안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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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의 국경에 위치했으면서 다른 터키 도시들과는 달리 지중해를 서쪽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 하타이는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한 지역이다.

하타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하타이 박물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이슬람 시대까지 이 지역과 인근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가득했다. 특히 세계적인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시카고 오리엔탈 인스티튜트, 레오나르도 월리 경이 이끄는 대영박물관, 오늘날 하타이 박물관에 안장된 대부분의 유물을 발굴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팀 등 쟁쟁한 고고학 연구소들이 이 박물관 건립에 참여했다. 후줄근하게만 보였던 박물관 입구가 50여년의 역사(1948년 개관)가 쌓인 고풍스러움으로 변하기도 잠깐이다.

내부는 온갖 모자이크의 집합이다. 한쪽 벽면을 장식한 최고 2300여년 전의 기하학 문양 모자이크도 곱지만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구원의 형상화’라는 작품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풍만한 여성이 아름답다. 이 모자이크는 당시 욕실의 바닥 부분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타이·박물관 동굴속 성베드로 교회

하타이 박물관은 1974년 히타이트와 앗시리아 시대의 석조 유물들을 포함하면서 5개 전시관에서 8개로 확장된다. 제6 전시관에는 안티옥(안타캬의 옛 지명)에서 출토된 머리 잘린 비너스상과 ‘티케’라는 안티옥의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안타캬는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3대도시로 당시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이다. 예수그리스도와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을 ‘크리스찬(기독교인)’이라고 처음으로 불렀던 곳도 이곳 안타캬라고 한다. 그래선지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동쪽으로 피신하다 이 곳까지 들어와 지은 동굴속 교회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안티옥의 성 베드로 교회(St. Peter’s Church)가 대표적인 곳이다.

십자군의 산이라 불리는 스터린 산의 서쪽면에 위치한 성 베드로 교회에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인 그들은 이곳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처절한 고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예배를 드리다가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뚫어놓은 동굴속의 비상탈출구로 랜턴을 비추자 지금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좁은 곳은 직경 50Cm 정도나 될까? 살갗이 찢기고 피가 배어나와도 붙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아니 그간의 신앙과 포교가 모두 헛고생으로 끝난다는 생각에 그들은 피흘리며 이 동굴을 수직으로 오르내렸을 것이다. 성 베드로 교회가 위치한 스터린산이 십자군의 산이라 불리는 것은 1098년 중세 십자군 원정 때 이 교회가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영화 벤허 촬영무대 ‘옛 왕족무덤’

안타캬 시내에서 차로 30여분 달리면 지중해 바다를 끼고 앉은 사만닥이라는 항만도시를 만난다. 동로마제국시절 가장 중요한 도시인 이 곳에서 사만닥은 실크로드의 육로의 끝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그리스나 다른 유럽 국가로의 문물 전파가 이 곳 사만닥으로부터 해로로 바뀐 것이다.

이 지역의 중요한 유물은 길이 1,300m, 최고높이 700m의 티투스터널이다. 정확히는 사만닥으로부터도 6km 떨어진 체블리키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해수면 상승으로 어렵사리 지어놓은 항구도시가 자꾸 바닷속으로 가라앉자 홍수방지와 관개수로의 두 가지 목적으로 산 중심을 똑바로 파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뚫어놓았다. 이 산 위에는 또 영화 ‘벤허’에서 나병환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사용됐던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 영화속에서 문둥이들이 검은 옷을 뒤짚어 쓰고 누워있었던 곳 하나하나는 옛 왕족들의 무덤자리. 원 자리야 어떠했건 수천년전의 배경 고증과 영화에서 꼭 필요했던 음산함을 화면으로 옮기기에 이곳보다 더 적당한 곳이 있었을까. 끝까지 남아 무덤자리 하나하나 사진을 찍다가 등줄기로 훅 오르는 섬짓함에 그만 카메라를 놓치고 말았다.

하타이, 안타캬, 안티옥. 다른 이름, 같은 지역. 지중해 연안답지 않은 소박한 바닷가 풍경과 뒤로 숨겨진 수천년 동안의 역사. 하타이 박물관에 소장된 완전치 못한 모자이크 만큼이나 그 역사의 조각을 짜맞추는 일은 고된 작업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 역사 발굴의 현장에는 항상 터키인들이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등 강대국들의 연구팀들이 분주하다는데 있다. 혹자는 전 유럽이, 아니 전 서방이 유럽의 조상, 서방의 조상을 찾기 위해 공조하는 모습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무렴 그들이 출토된 유물을 몰래 숨겨 본국으로 가져가기야 하겠냐마는 CNN 터키 특파원과 발굴 현장에서 인터뷰를 나누는 미국인 교수를 지
켜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광경이다. 경제력, 기술력 부족으로 문화까지 남에게 맡겨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