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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한국

전남 광양 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

기독교 역사와 민족혼 담아 복음의 성지 꿈꾸다
광양시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 그곳을 가다
2008년 07월 19일 (토) 19:44:06 박성진 기자 lovepsj@alltha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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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시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 전경

광양시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이어 받아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백운산과 청정 섬진강을 중심으로 자연적 관광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이에 광양제철소와 최첨단 컨테이너부두 등 산업적 관광자원을 연계해 자연과 산업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동북아 경제자유지역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광양(光陽)의 ‘기독교 성지’ 공원화 계획에 따라 21세기 새로운 기독문화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전라권의 대표적인 순교 유적지인 여수지역 애양원(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과 순천 매산동 일대 종교지역에 이어 또 하나의 순교순례지로 알려진 광양지역의 웅동(최초로 예배드린 곳) 일대를 중심으로 ‘선교공원’으로 조성된다.
그 첫 사업으로 지난 5월 완공된 ‘광양시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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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순교자기념관

광양 선교공원 중심에 선 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

전남 동부권의 기독교 전파와 선교사들의 활동 근거지에 대한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한 민선 4기 이성웅 광양시장은 “웅동교회 일대가 기독교 성지로 개발되면 연간 12만명 정도의 관광객 유치와 함께 기독교 선교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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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
광양시가 총 사업비 39억 원을 들여 지난 2006년 8월부터 2년여 동안 건설한 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은 연면적 2,823.19㎡, 건축면적 1,069.03㎡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개신교 최초로 국비지원을 받아 건설된 기념관은 전시실을 비롯해 숙소,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기독교 선교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장이 될 뿐만 아니라 교계행사와 문화행사, 수련회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기념관은 각 층별로 한국선교역사, 광양지역선교역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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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관광.순교지.사진전시관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는 순교자 214명의 영정과 유물이 안치되어 있어 한국 기독교 선교역사의 애국정신과 순교정신을 고증하고 있다.

특히 광양출신 순교자 기념관 앞에는 일제 강점기 뿐만 아니라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순교한 광양출신 순교자 안덕윤, 양용근, 조상학 목사의 순교 기념비가 건립되어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고 있다.

2002년 12월 (사)광양시기독교선교1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2006년 8월10일 신축공사 착공예배를 드린 이후 하루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한 사업위원회 이사장 이용훈 목사는 지난날의 소회를 밝힌다.

“기독교 역사 100년을 자랑하는 광양이 기념관 개관을 통해 신앙과 의의 도시, 기독교 역사와 민족혼을 배울 수 있는 터전으로 발돋움하여 한국 선교역사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목사는 순교기념관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한 한국사진선교센터 신윤식 선교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윤식 선교사를 만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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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렘 전경

국내 유일하게 선교사가 아닌 민간인을 통한 복음 전파

광양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게 된 유래를 살펴보자.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려던 일본난인을 인천까지 뒤쫓아가 죽이고 웅동마을로 숨어든 한태원씨를 잡기 위해 광주에서 한 관리가 웅동마을에 파견된다.

어느 날 관리가 도박을 일삼는 주민들을 보고 “광주에 가면 ‘야소교(예수교의 음역어)’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를 믿으면 도박을 끊을 수 있다”며 광주 양림동 책방에서 일하는 조상학 목사(1877∼1950·공산당에 순교당함)를 소개한다.

이에 동갑내기(당시 40세)였던 박희원, 서병준, 장기용이 1904년 광주까지 3일 길을 걸어가 조 목사로부터 복음을 듣게 된다. 광주에서 복음을 접한 3명은 웅동으로 돌아와 집 한 칸을 빌려서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이곳이 광양지역 첫 예배당인 웅동교회다. 사랑방 예배는 교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웅동마을에 사는 19가구 전부가 예수를 믿게 되는 기적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에 1905년 3월 인근 신황리에 한옥 8칸 목조건물로 신황교회를 지어 이사했다. 이후 웅동교회는 2차례, 신황교회는 3차례 각각 증·개축되어 각각 예배를 드리고 등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교사들이 처음 복음을 전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웅동마을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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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 전경

광양 기독교계 선교공원·문화관광 사업 상생의 모델 제시

선교기념관과 광양시에서는 ‘선교공원’ 을 광양시 종합관광 개발사업과 연계해 전남 동부권 최고 관광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광양의 민족혼과 기독교역사 100년에 감추어진 신앙의 뿌리를 바르게 교육하고 체험학습장을 통해 기독교와 지역의 관광 사업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상생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오늘도 값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광양시는 포스코 연관산업, 항만·물류산업, 농업·관광산업, 조선산업 등을 통해 꾸준한 인구 유입으로 14만명이 넘는 역동적이고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이라는 또 하나의 기독교 문화를 결합해 관광자원의 극대화를 바라고 있다.

또한 광양기독교계는 성지순례코스 등 순교자적 애국심 고취와 백운산, 섬진강 관광벨트화 코스 다양화로 국ㆍ내외 관광객 증대의 기대효과를 예상하면서 지역사회발전의 역군으로 일선에서 뛰고 있다.

이는 지역선교의 진일보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하신 예수의 가르침처럼 지역사회 깊숙이 들어가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며, 기독교인들만의 공간이 아닌 광양의 역사와 선교 발자취를 하나로 아우른 열린 문화공간 마련함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진리의 복음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처럼 광양시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관도 참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지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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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전경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81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