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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한국

여수 애양원 동영상





여수애양원하면 손양원목사님하고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뜻깊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산돌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사랑으로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한 순교자요, 사랑의 사도다. 그는 기도를 호흡으로 삼고, 성경을 양식으로 삼고 전도가 생활이 되어 사신 분으로 원수에게는 사랑으로, 고난받는 개인과 민족을 향해서는 소망을 던져 주었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손양원 목사 순교 생애
1936년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 사건으로 애양원교회를 비롯한 순천노회 대부분 목사와 장로들이 검속되었다. 그 당시 애양원교회를 담임하던 손양원목사도 구속되었다. 그는 원탁회 사건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광주형무소에서 줄곧 옥중생활을 했다. 1948년 여순사건때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 형제가 남한 내부의 빨치산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 학살자 안재선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삼는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었다. 손양원목사는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해 순교하였다. 공산군이 남침 중에 교회 장로들이 배를 준비하고 손목사에게 피난을 권유하였으나 손목사는 교인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고 끝내 거절하였다. 공산군 점령 이후에도 후퇴 직전 많은 기독교인, 우익인사들과 함께 여수에서 가까운 미편 과수원에서 1950년 9월 28일 총살당하심으로 순교하셨다.


*순교 유적지
손양원 목사님이 1939년 7월 14일부터 1950년 순교하실 때까지 시무하셨던 [애양원교회]를 볼 수 있다. "애양원 예배당"이라는 현판이 적혀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곳 하나 가식이 없고 오로지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검소한 물품들로 단장되어져 있다.
교회와 얼굴을 마주 하고 있는 잔디화단에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비], 손양원 목사님의 가족이 안장되어 있는 [삼부자 묘]가 있고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순교자 기념관]이 나온다. 이곳은 순례객들을 위하여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의 삶의 자료들과 애양원의 신앙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 순례객들의 숙소와 수련회 장소로 사용되는 [수양관]이 있다. 이곳은 손양원 목사님이 나환자 목회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하셨던 것으로 잠시 한성신학교를 세웠다가 폐교되어 1986년 개축을 해서 수양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애양원 교회는 손양원 목사의 유업을 받들어 두가지 특징적인 신앙의 도를 닦아 나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방문한 순례객은 새벽 4시에 시작하는 새벽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한다는 규칙인데 이곳 성도들은 대부분 예배시간 30분 전에 출석해서 찬송과 기도로 예배를 준비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정오 12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리고 동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3분 정도 기도를 드린다. 이 정오 기도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시행하신 기도로 첫째,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둘째는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셋째는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

   http://www.wmc.or.kr/wmck_aeyang.htm 에서 발췌
 
   애양원 홈페이지 http://www.aeyangwon.org/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