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성 소피아
모자이크
제국의 문 위 예수님 : 교회로 들어가는 중앙 문은 황제와 대주교만 이용했던 것으로, ‘제국의 문’으로 불립니다. 문의 위쪽 모자이크 중앙에는 예수님이 왕좌에 앉은 채 오른손으로 축복의 성호를 그으면서 왼손으로는 ‘너희에게 평강이,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라고 쓰인 성경을 펼쳐들고 있습니다. 왼쪽은 마리아, 오른쪽은 천사 가브리엘입니다. 엎드린 사람은 황제 레오 6세(886~912)입니다.
Haghia Sophia는 그리스어이고, Aya Sophia는 터키어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지혜(Sophia)라는 의미입니다. 비잔틴 제국(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A. D. 537년에 사도행전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를 추모하는 예배 시 봉헌되었으므로 무려 1,500년 동안 건재한 건축물입니다. 아시아와 유럽판 사이에 위치하기에 지진이 많은데도 6세기의 거대한 건축물이 온전하다는 사실 자체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성전입니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4개의 미나레(Minare, 첨탑)와 밈베르(Mimber, 설교단), 미흐랍(Mihrab, 메카를 향한 문)이 세워져 모스크로 사용되어오다가 1935년 이후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견본이자, 회교사원 양식의 모델입니다. 모스크는 모두 소피아 성전처럼 거대한 중앙 돔과 보조 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 세계 유일신 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회교)는 모두 구약의 하나님을 섬기고,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공유하고 서로 배우고 있습니다. 기독교 최고의 건축물에 미나레를 세우고, 말씀에 따라 새겨진 모자이크를 우상이라며 이슬람 가르침대로 회칠을 해버렸지만, 터키는 법적으로는 이슬람 국가가 아닙니다. 이슬람 국가는 이슬람을 국교로 가진 국가를 말합니다.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에 의해 엄격한 정교분리가 이루어졌고,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며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으로 여성 공무원, 여학생, 여경, 여군들의 차도르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주일인 금요일은 모두 근무하므로 예배를 드리기 어려우며, 휴일인 일요일에야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모슬렘)입니다. 극히 일부의 시골을 제외하면 일부다처제 사회도 아닙니다. by 지동훈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이 교회는 금 90여톤에 해당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축하여 AD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봉헌되었다.
비잔틴제국(537~1453)의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1453년 오스만터키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이후 회교사원으로 개조되어 500여년 동안 사용되었다.
건물밖의 4개의 회교 첨탑은 시대에 따라 각기 형태를 달리하며 세워졌다.
1953년 터키 공황국의 초대 대통령 케말파샤는 유서깊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보존해 나갈 것을 결정, 종교적인 의식을 금했다.
15층 높이에 해당하는 높은 중앙돔과, 보조돔이 있는 이 교회는 건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잔틴 건축물의 표본이며, 40여개의 대형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되는 등 회교건축양식은 물론 유럽의 각종 건축약식에 직 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건물내에는 초기 기독교 성화와 회교의 종교적인 장식물이 공존하고 있어 기독교와 이스람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미흐랍(Mihrab, 메카를 향한 문) : 전 세계 모든 모스크의 입구 정면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미흐랍을 세웁니다. 최초 모스크가 아닌 성당으로 지어진 곳이기에 자세히 보면 입구 정면에서 약간 우측(메카 방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 밈베르(Mimber, 설교단) : 기독교의 목사님과 역할이 많이 다르지만 이슬람의 설교자 ‘이맘’의 설교단입니다.
- 치유 기둥 : 성 그레고리의 치유기둥.
- 여왕 예배처 : 왕족이라도 모슬렘 여성은 모스크에서 예배(divine service) 드릴 때 남성과 별도의 장소를 이용했습니다. 2층의 가장 좋은 장소로 엡스(apse. 설교단/미흐랍이 있는,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입니다.
이스탄불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이스탄불은 기원전 600년 경 당시 유력 민족인 메가리아인 비자스에 의해 창건됐다. 비잔티움이라는 이스탄불의 첫 명칭이 이때 붙여진 것이다. 다음. 서기 330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동로마 천도를 감행하면서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 비잔티움으로 옮겼다. ‘콘스탄틴의 수도'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이 곳의 명칭은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다. 로마가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인 것처럼 당시 비잔티움도 보스포러스 해협이 관통하는 7개의 언덕으로 이뤄져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약 1000년을 융성했다. 13세기 십자군 원정으로 크게 흔들리더니, 15세기에는 오스만 터키의 술탄 메멧 2세의 공격을 받아 이슬람 세력에 완전히 함락 당할 때까지는.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때부터 유지되고 있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또는 함께 가지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들어낸 역사적 명칭들이다. 군사, 종교, 상업,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로의 여로는 흥분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노플이 되고 다시 이스탄불이 됐다. 그리고 성 소피아 사원은 모스크로 바뀌었다. 이스탄불이 겪어온 문화와 종교의 변화는 성 소피아 사원에서 절반은 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안 황제 때 안테미우스와 이스도루스가 건축했다고 알려진 성 소피아 사원의 초기 모습은 그리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발굴이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사원 앞에 전시된 그리스 양식의 석조작품과 제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 소피아 사원은 지금은 사원으로도 모스크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아야소피아(Ayasofia)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적인 대리석 유물과 장식 모자이크를 수백만의 관광객에게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의 역할만을 담당할 뿐이다. 이 역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뜻의 성 소피아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지혜가 아닐까. 내부로 들어가면 사원 중앙부분 돔의 거대함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40개의 창문과 1000년이 넘어도 전혀 바래지 않은 모자이크 성화들이 빛과 색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무슬림의 침략으로 회 덧칠의 수난을 당한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린 벽화는 후손들에 의해 회칠을 벗어나면서 오히려 더 성채를 띤다. 자연의 색만으로 그렸기에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비잔틴과 로만, 터키의 물고 물리는 혈투에도 살아남았기에 드러난 예수와 마리아의 얼굴이 더욱 값지다.
◆ 성소피아 (The Hagia Sophia)
나이가 들 때로 든 거구의 성소피아(하기야 소피아)는 대부분의 노인이 그렇듯 노쇠해졌다. 중앙 돔을 바치는 거대한 철근 구조물이 55.6m 높이의 천장까지 뻗어 올라가 있다. 그래도 20차례 지진의 피해를 견디며 1,500년 동안이나 끄덕없이 서 있었으니 '백전노장'의 의지는 알아줘야 한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는 제국의 수도에 어울리는 교회가 필요했다. 그러나 첫 번째의 목조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고 두 번째 건물은 반란으로 무너졌으며, 세 번째 건축된 것이 지금의 성소피아다.
최초의 돔양식 건물인 성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 바로 하느님의 지혜라는 뜻이다. 기원후 532년에 짓기 시작해서 537년에 완공됐으니 완공까지 5년 10개월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만리장성, 앙코르와트 등과 함께 세계 8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이유도 높이가 무려 55.6m나 되는 돔을 그토록 단기간에 완성하는 것이 현대의 기술로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날 당시 성소피아 성당의 경쟁상대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빠른 공사의 진행을 위해 공사 담당자에게는 제국에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 대역사를 시작한 유스티니안 황제는 성당이 완공되자 헌납 예배 도중에 흥분해 성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예루살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 솔로몬, 나는 그대를 능가할 지어다"
성소피아 성당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운명의 전환기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비잔틴제국)의 함락이었다. 새로운 주인이 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성소피아성당을 3일 만에 회교사원으로 개조했고 제단과 벽을 장식했던 각종 성화들은 5cm의 두꺼운 회칠아래 감추어졌다. 이후 복원공사를 통해 회벽을 제거되고 예수나 마리아의 벽화들은 다시 빛을 찾았으나 '회춘'이란게 쉽지 않아서 많이 회손된 상태다. 현재는 박물관의 용도로만 사용된다.
예수와 그의 조상들
오른쪽 돔에는 조상들에 둘러싸인 예수가 왼손에 성경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져 있으며 손가락을 펴서 축복하는 모습니다.
그 주위로는 넓고 둥근 형태로 예수의 초기 조상들, 즉 아담에서 야곱에 이르기까지의 인물이 윗 부분에 표현되어 있고, 바로 아랫 부분에는 야곱의 자녀들 중 15명을 그렸다. 이들은 독립된 벽감(壁龕: 벽에 움푹 들어가서 조각품이나 꽃병등을 두기에 적당하게 만든곳)에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들의 머리 윗 부분에는 그 조상들의 이름이 각각 씌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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