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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요르단

[요르단] 소돔과 롯이 피한 소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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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의 도움으로 승용차를 이용해 요르단의 사해 남단에 있는 소돔과 소알을 찾았다. 소돔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곳이 주장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마사다에서 남쪽으로 15㎞ 정도 내려가면 엔 보케그(Ein Boqeg)가 나오고 그 남쪽에는 소금으로 이루어진 소돔산이 나오는데 이곳이 소돔이라는 설과 또 다른 곳은 사해 동쪽 리산반도 바로 남쪽 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최근에는 사해 북쪽의 바다 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까지도 위치에 대한 약간의 논쟁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해 동쪽에 있는 요르단쪽의 현재 바브 아드 드라(Bab adh Dhra)가 가장 유력하다.

그곳에 가기 위해 암만에서 요단 계곡을 향해 50㎞쯤 내려가면 성경에 언급되는 벧니므라(민 32:36)가 나오고 조금 더가면 바로 요단 계곡으로 뻗어 있는 65번 도로와 만나게 된다. 거기에서 65번 도로를 따라 사해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사해 해안가를 따라 50여㎞를 달리자 옛날 모압과 암몬의 경계가 되었던 아르논 골짜기 하류가 나타났다. 오늘날에는 사해를 따라 남북으로 뚫린 도로가 포장이 잘돼 있어 요단 고원 지대의 왕의 대로와 달리 편안하게 달리 수 있다.

계속해서 사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30분 정도를 달리자 사해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리산반도가 도착했고 그곳에서 길하레셋(현재 카락)으로 가는 50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5㎞쯤 달려가니 철조망에 둘러싸인 바브 아드 드라,성경의 소돔이 나타났다. 사실 이곳은 아무런 유적도 없고 마을도 전혀 없어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지만 현지인의 도움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날 이곳은 유황불로 멸망했다는 성경의 기록처럼 벽돌조각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광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이곳이 소돔이었다는 안내 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소돔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곳이고(창 13:1∼13)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고 유황불의 심판으로 멸망된 성읍이다(창 19:23∼25). 소돔성이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죄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성경이 자세히 말해주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지명의 뜻으로 보면 율법에서도 엄히 금하고 있는 남색이 성행할 만큼 죄가 극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소돔이란 말은 남색이란 뜻의 소도미(Sodomy)에서 온 말이다. 실제로 롯의 집을 찾아온 천사들에게 그곳 사람들은 동성애를 요구했다(창19:5). 이 일로 성경에는 여러 번 교훈을 들어 소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사 13:19,렘 23:14,암 4:1). 특히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은 가버나움을 향해 “만약 가버나움에 행한 권능을 소돔에 베풀었다면 소돔이 멸망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다”(마 11:23)고 말씀하셨다.

나는 안내 표지판만 남아있는 소돔의 모습만을 사진에 담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롯이 피했다는 소알로 향했다. 소알은 롯이 피했던 거리치고는 상당히 먼 곳에 있었다. 자동차로는 10분 정도 거리밖에 안되지만 그 옛날 불타는 소돔성에서 빠져나오는 롯에게는 아주 먼 거리로 느껴졌을 것이다. 소알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과 주장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사해 남단에서 가까운 소돔 남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소알은 구약 시대의 작은 성읍으로 롯이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잠시 피했던 작은 성이었다(창 19:22∼23). 아브라함 당시 이곳은 성서의 표현대로 여호와의 동산 같은 곳이었고 그래서 롯은 삼촌인 아브라함의 양보로 소알을 선택했던 것이다(창 13:8∼11). 오늘날에도 전혀 쓸모없는 주위 지역과는 달리 이곳은 비옥한 평야가 사해 남쪽 해안까지 전개돼 있어 농사를 짓고 있다. 소알들에서 동쪽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롯이 거주했다는 동굴이 있다. 바로 그 동굴에서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인해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였던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는 두 아들을 낳는 비운의 역사를 탄생시켰다. 이곳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와 유물들은 길하레셋(케라크)성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동굴 바로 옆에는 비잔틴 시대 때의 교회 터가 남아있었다.

롯이 소돔에서 빠져나와 거주했던 소알의 한 동굴에서 바라본 소알들은 그 옛날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는 표현대로 오늘날에도 매우 비옥한 농토였다. 그러나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르 엣 사피(Ghor es Safi) : 롯의 고장
아라바 지역의 황량한 사막지대와는 대조적으로 사해의 남동편 지역은 나무가 우거진 푸른 들이 펼쳐진다. 요르단 남부의 경작지 고르 평야 지대이다. 이곳은 성경 창세기 14:2의 소돔, 고모라, 아드마, 소보임, 벨라(소알) 등의 다섯 작은 왕국이 있었던 지역이다. 성경의 기록에 따라서 이곳 사피 지역을 롯의 고장이라고도 부른다.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져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게 되는데, 성경은 이곳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이전에는 애굽땅과 같고 여호와의 동산과 같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소알 땅은 비잔틴시대 때는 주라(Zoora)로 불렸고, 마다바의 모자이크 지도(Zoar)에서도 볼 수 있다. 조가르(Zoghar)라는 아랍 지명은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설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주변 언덕들을 올라서면 뭔가 옛스러운 잔해들을 볼 수 있다.

키르벳 쉐이크 이사 : 소알
소알 성의 유적지는 와디 엘하사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설탕공장이 있는 '키르벳 쉐이크 이사' 로 불리우는 언덕으로 추정되나, 오늘날 이곳에는 마멜룩 시대의 건물의 기초가 약간 남아 있을 뿐 어떠한 유적도 찾아볼 수 없다. 

카하프 롯 : 롯의 동굴( cave of Lot)
고르 엣 사피의 북동 쪽 언덕, 고대 소알 땅이 보이는 한 언덕에는 '롯의 동굴'(카하프 룻, cave of Lot)이라고 불리는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유적지가 발굴되어 있다. 마다바 지도에는 이곳을 '성 롯의 수도원' 으로 적고 있다. 이 동굴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시에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난 후, 롯이 그의 두 딸과 피신했던 동굴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 때의 교회 터와 건물들이 발굴되었으며, 롯의 동굴을 중심으로 지어졌던 교회당의 모자이크도 거의 복원되었다. 이곳에는 중기 청동기 시대를 전후한 유적과 기원 후 8세기 아랍 왕조의 유적도 발굴되고 있다.

밥 엣드라(Bab edh Dhra) : 소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유적지로 소돔의 후보 지역이다. 성벽을 갖추었던 전형적인 고대 도시로, 그 건설 시기는 기원전 2600년 경으로 보고 있다. 두터운 진흙 벽돌 및 신전의 자취가 남아 있다.

텔 누메이라(Tell Numeira) : 고모라
일부 학자들에 의해 고모라 지역으로 지목받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이다.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던 고대 도시이며 기원전 2350년경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흙 벽돌로 쌓은 성벽의 흔적과 돌 무더기가 남아 있으며 텔의 남쪽 200m 지점에는 누메이라 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망대도 남아 있다.


사해와 롯의 동굴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인 장소 중 하나로서, 매우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이에 필적하는 강력한 영적 상징성을 갖추고 있다. 성경에서 사해는 "아라바 바다", "염해" 또는 "동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중세 문헌에서는 "악마의 바다"로 지칭되기도 하지만, 아랍인들은 항상 사해를 바하르 루트, 즉 롯의 바다라고 불렀다.

악명 높은 소돔과 고모라 및 사해 평원의 기타 도시들은 구약에서 가장 극적이고도 오래 지속되는 이야기 중 일부의 대상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사해 평원에 도달한 직후, 가축과 사람들을 나누어 각자의 길을 간다 (창세기 13:1~13). 하나님은 패역하고 교만한 백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지만, 아브라함은 롯과 성 중의 기타 의로운 자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롯과 그 가족이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나올 때,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고 만다 (창세기 19:26).

살아남은 롯과 그의 두 딸은 소알 (현재의 사피)이라는 작은 성읍 인근의 굴로 피신한다. 성경에 의하면,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들은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모압과 암몬 왕국은 현재의 요르단 중부 지역에 위치했다.

신약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유다서 1:7).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말씀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되새기며 "롯의 처를 기억하라" 고 특별히 경고한다. 또한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는 이러하리라" 고 말씀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 물질적 소유를 선택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7:28~32).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소돔과 고모라시는 사해 평원 동남지역 중부의 밥 에드라와 누메이라라는 고대 성읍 유적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두 성읍에서는 청동기 초기에 발생한 화재에 의한 멸망의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후 이 곳에 사람이 거주한 적은 없다. 그 지역의 3개 도시는 "아드마, 스보임과 벨라, 곧 소알" 이었다 (창세기 14:2). 이 곳의 유적은 여전히 사해 근방에 매장되어 있다. 사해 평원을 따라 페이페, 사피, 크네이지라 등의 장소에서 수천 기의 묘를 포함하는 대규모 매장지 등 기타 청동기 초기 마을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아브라함과 롯의 생애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은 아마도 청동기 초기 또는 중기 (BC 2500년 ~1500년경) 에 발생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롯과 그의 딸들과 관련하여 창세기에 기록된 사건이 발생한 후 2,000여 년이 경과한 초기 기독교 시대인 AD 6세기에 요르단 땅에는 기독교 수도원과 교회가 산재하고 있었다.

비잔틴 교인들은 소알 (현재의 사피) 성읍 위의 산비탈에 성인 롯에게 봉헌하는 교회와 수도원을 지었다. 이 건물은 롯과 그의 딸들이 피신했던 동굴 주변에 건립되었다. 수도원 단지가 발굴되어 현재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사해 연안 평원 인근 어딘가에 소금 골짜기가 있는데, 이 곳이 바로 다윗왕이 "에돔 사람 18,000명을 쳐죽인" 곳이다 (사무엘하 8:13). 성경 (신명기 1:1)에서 "광야"로 지칭되는 아라바 사막은 사해와 아카바 만 사이의 요르단 남부에 위치한 반 건조 기후 지역으로 현재의 명칭은 와디 아라바 (Wadi Araba)다.

북쪽의 요단강에서 시작하여 눈길을 끄는 신축 호텔, 리존트, 스파와 멋진 온천을 지나 천연 소금 생성물이 위치한 남단의 광활한 평야 지대로 이어지는 사해 동부 해안 전체는 잘 닦여진 도로를 갖추고 있어서 요르단 중부와 남부로부터의 접근이 용이하다.

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사해 표지판이 나올 때 까지 이동한다. 우회전하여 표지판을 따라 간다. 롯의 동굴은 사해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