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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유럽

[독일] 폭풍속의 서원, 교회사 새장을 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그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신다. 기도하는 조용한 골방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과 번개로 그의 뜻을 전하시기도 한다.

1505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중부 독일의 7월 어느 날.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가 연방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명문 에르푸르트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한 이 젊은이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먼 길을 걸어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에르푸르트에 가까웠졌을 때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씨는 더욱 험악해지고 순식간에 어둠의 땅이 되어버렸다.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번쩍이는 칼날과 같은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사방으로 내려꽂혔다. 공포에 질린 청년은 고꾸라질 듯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순간 그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긴박한 절규가 튀어나왔다. “성 안나여! 도와주소서.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혼비백산한 청년의 입에서 황망 중에 터져나온 서원이었다. “수도사가 되겠다”가 되겠다는 한 마디 서원의 말이 교회 역사의 새로운 장을 활짝 여는 시발점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는 길위에서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은 1505년 7월2일 에르푸르트(Erfurt) 근교에서 폭풍 가운데서 한 젊은이를 부르셨다. 그가 바로 에르푸르트대학의 젊은 법학도 마르틴 루터였다.

이 일로부터 꼭 2주 후 마르틴 루터는 에르푸르트에 있는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명문대학에서 법학공부를 접고 서원한 대로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루터 아버지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는 자기가 겪었던 험난한 고생길을 아들만은 걷지 않게 하기 위해 아들 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루터가 법률공부를 시작했을 때 당시 상당한 고가품이었던 법률전서 한 질을 사줄 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법률공부를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루터는 이를 포기하고 수도사가 되겠다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것은 루터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대했던 삶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하나님은 루터에게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루터가 그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을 당시 에르푸르트에는 많은 수도원이 있었다. 그 중에서 루터가 입문한 수도원은 규율이 엄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로 널리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단’에 속한 수도원이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13세기에 일단의 수도사들이 모여 조직한 것이었다. 이들의 수도원은 상당히 번성했고 루터 당시에는 유럽 전역에 이 수도단에 속한 수도원이 수십 개에 달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수도원에서 몇년 동안 생활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접하게 되었다. 후일 루터 신학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은총’ 과 성도들의 ‘믿음’을 강조하는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간 지 2년 뒤,그의 나이 24세가 되었을 때 그는 에르푸르트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가톨릭 신부로 서품을 받는다. 신부로 서품 받자 수도원장은 그를 에르푸르트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했다. 루터에게 정식으로 높은 수준의 신학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수도사로 입문한지 불과 2년만에 신부로 서품 받는 것도 파격적인 일이었고 신부로 서품 받자마자 명문대학 신학부에서 신학 수업을 받게 한 일도 특별한 배려였다.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앞으로 루터가 수도원과 가톨릭교회를 위해 크게 일할 훌륭한 재목으로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에르푸르트는 독일 튀링겐주의 주도로서 번성하는 도시이다. 루터가 공부했던 에르푸르트대학은 오늘도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독일의 명문대학으로 건재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입문했던 수도원도 잘 보존되어 있고 수도원 시절 루터가 기도하고 고행하며 명상하던 작은 방도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또한 루터가 신부로 서품 받았던 대성당도 루터 당시의 웅장한 모습 그대로 우뚝 서 있어 도시 전체가 젊은 날의 루터의 체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박준서 박사(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