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루터의 친지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마음놓고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521년 4월 독일 남부 보름스에서 열렸던 어전 제국회의에서 루터는 교회개혁에 관한 종래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독일 황제는 로마 교황청의 강요에 의해 루터를 독일제국의 ‘범죄자’로 정죄하는 황제의 칙령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제부터 루터의 생명을 빼앗는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루터에게는 생사가 달린 위기의 시간이었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루터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고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독일제국의 범죄자로 선언한 ‘황제의 칙령’이 내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루터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신임하는 부하들을 시켜 납치극을 꾸민 것이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도운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 루터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보호자요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 납치극은 그로서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루터를 보호해주어서는 안된다는 황제의 칙령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반드시 돕는 자를 보내주시고 피할 길도 열어주신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한 죄로 지하감옥으로 던져졌을 때도 하나님은 구스인 환관을 보내어 그를 구출해주셨고 엘리야 선지자가 배고파 쓰러지자 까마귀를 동원해서 먹을 것을 갖다주셨다. ‘육체의 가시’로 고생하던 사도 바울에게는 의원 누가를 보내주셔서 그를 돌보게 하셨다. 위기에 처한 루터에게 하나님은 선제후 프리드리히를 보내주셨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하셨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루터에게 안성맞춤의 피신처가 되었다. 이 성은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더구나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영지에 있었기 때문에 루터는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다. 그래도 루터가 이 성안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러 변장을 하고 이름도 가명을 썼다.
루터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위기의 시간일수록 더욱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다. 그가 성에서 숨어 지낸 기간은 10개월 남짓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그는 12편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업적은 이 기간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루터 당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닫혀진 책’이었다. 루터 자신도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원에 들어갈 때까지 성경을 한번도 읽어본 일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터는 모든 세례 받은 크리스천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성직자들이라고 하는 ‘만인제사장’을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크리스천은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렇게 성경을 모든 크리스천이 읽을 수 있는 ‘열려진 책’으로 만들어 준 것은 루터의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이다.
독일 사람들이 누구나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독일어 성경이 필요했다. 루터는 피신 생활 기간을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번역작업에 집중,불과 12주만에 신약성경 번역 초역을 끝냈다. 생동감 넘치는 유려한 문체로 오늘날까지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루터성경’ 번역작업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연세대 교수·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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