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관광도시는 보드룸(Bodrum)이다. 터키인들이 명절을 맞이하거나, 연말연시 혹은 여름휴가 때 가장 많이 찾는 보드룸에는 온통 하얀 색으로 벽을 칠한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 있고, 출항을 준비하는 요트들이 항구에 빽빽이 정박해 있어 터키이면서도 그리스 같은 느낌을 풍기는 이국적인 도시이다.
보드룸을 상징하는 포스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뭐니뭐니해도 보드룸성이다. 성 요한(St. John) 기사단이 15세기에 세운 성으로 성 베드로(st. 피터스)성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수중 박물관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인근의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수중 박물관이라는 자랑을 들었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보다는 터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유럽식의 성이라는 것이 더 흥미를 일으킨다.
성 요한 기사단의 절망
보드룸성은 융성하는 오스만제국과 쇠퇴하는 유럽의 중세 기사 문화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은빛 찬란한 갑옷과 긴 칼로 중무장한 성 요한 기사단과 맞서 오스만제국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가 인해전술과 막강한 화력으로 대결을 벌였던 로도스섬도 이곳에서 가깝다.
보드룸성을 지키는 기사들의 국적에 따라 이름 붙여진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성채에서는 그 견고함 못지않게 오스만제국에 맞서 오랜 세월 동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여 왔던 성 요한 기사단의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언제 몰려올지 모를 오스만 제국의 대군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정작 이곳에서는 큰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오스만제국의 가장 훌륭한 왕 중의 하나인 카누니(법전: Kanuni) 술탄 슐레이만(Sultan Suleyman)의 공격에 의해 로도스 섬이 함락 당하고,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를 떠나 말타로 본거지를 옮길 때 이 곳의 보드룸성도 오스만제국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참, 보드룸성을 방문할 경우 유적지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오가는 배들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져 보길 권한다.
보드룸 항구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에게해를 항해하는 크루즈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좀 더 여유가 있다면 가까운 그리스의 섬인 코스섬을 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곳엔 스킨스쿠버를 가르쳐 주는 클럽도 있다.
시즌이 되면 시장은 항상 외국 관광객으로 붐빈다. 보드룸의 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많은 락카페와 디스코(디스코텍), 주점은 밤을 대표하는 빼놓을 수 없는 보드룸의 상징이 되었다.
보드룸의 옛날 이름은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인데 할리카르나소스는 그리스에서 넘어온 도리아(Doria)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도리아인과 이곳의 원주민인 카리아(Caria)인들은 별 어려움 없이 쉽게 융화됐다. 도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코스, 린도스, 카미루스, 로도스의 이아리수스, 크니도스 등과 더불어 6개 도시국가의 동맹의 일원이었던 할리카르나소스는 이웃의 이오니아(Ionia) 동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도리아 동맹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성스러운 무덤, 마소로움
할리카르나소스를 유명하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마소로스(Maussollos)의 무덤 마소로움(Mausoleum)일 것이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함께 터키 땅에 자리잡은 옛날 세계의 최고 건축물 중의 하나인 마소로움은 얼마나 웅장했던지 마소루스의 무덤을 뜻하는 마소레움은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 ‘영묘’라는 단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길이 38미터 폭 32미터 높이 45미터의 이 웅장한 건축물은 지금은 단지 그 기초만이 남아 있어 방문객에게 아쉬움을 준다.
이렇게 폐허만이 남은 이유 중의 하나는 지진에 의한 파괴도 있겠지만 로도스섬의 성 요한 기사단이 오스만제국의 공격을 대비해 성을 보강할 때 이 마소로움의 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조각상도 영국에서 가져가면서 지금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마소로움의 복원도를 보면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와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보드룸의 원형극장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수용인원은 약 1만3,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원형극장은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과 에페스의 극장이 주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존상태도 좋지 않다. 아니 너무 복원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복원 할 바에는 그냥 놔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
보드룸은 반도다. 보드룸의 주변에는 많은 휴양도시가 있다.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버로 얄르카박이다. 그 외에도 괼쿄이, 카드칼레시, 규뮤슈륙, 투르구트 레이스는 보드룸보다도 더 좋으면 좋았지 뒤떨어지지는 않는 아름다운 곳이다. 보드룸반도 전체가 휴양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드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발륵츠이다. 이 말은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보드룸성의 입구에 서있는 동상의 인물과 얽혀있다.
고대 할리카르나소스 이후로 보드룸은 아주 작은 어촌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오스만제국 사람이었던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에 의해 전 터키에 사랑받는 장소로 떠올랐다.
그는 명문가문에 태어난 사람인데 자기 부인과 정을 통한 아버지를 살해한 죄목으로 이곳에 유배됐고, 이곳에서 어부 생활을 하면서 문학 활동을 벌였다. 뛰어난 문학가인 그가 쓴 글은 보드룸을 전 터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언젠간 그의 작품을 한글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의 작품을 한글로 옮기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의 터키어 실력을 한탄하며 그가 남긴 말을 읊으며 보드룸을 떠난다.
“아무 생각하지마요. 당신이 이곳에 왔던 것처럼 당신도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온갖 추억을 보드룸에 두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보드룸을 상징하는 포스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뭐니뭐니해도 보드룸성이다. 성 요한(St. John) 기사단이 15세기에 세운 성으로 성 베드로(st. 피터스)성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수중 박물관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인근의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수중 박물관이라는 자랑을 들었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보다는 터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유럽식의 성이라는 것이 더 흥미를 일으킨다.
성 요한 기사단의 절망
보드룸성은 융성하는 오스만제국과 쇠퇴하는 유럽의 중세 기사 문화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은빛 찬란한 갑옷과 긴 칼로 중무장한 성 요한 기사단과 맞서 오스만제국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가 인해전술과 막강한 화력으로 대결을 벌였던 로도스섬도 이곳에서 가깝다.
보드룸성을 지키는 기사들의 국적에 따라 이름 붙여진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성채에서는 그 견고함 못지않게 오스만제국에 맞서 오랜 세월 동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여 왔던 성 요한 기사단의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언제 몰려올지 모를 오스만 제국의 대군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정작 이곳에서는 큰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오스만제국의 가장 훌륭한 왕 중의 하나인 카누니(법전: Kanuni) 술탄 슐레이만(Sultan Suleyman)의 공격에 의해 로도스 섬이 함락 당하고,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를 떠나 말타로 본거지를 옮길 때 이 곳의 보드룸성도 오스만제국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참, 보드룸성을 방문할 경우 유적지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오가는 배들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져 보길 권한다.
보드룸 항구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에게해를 항해하는 크루즈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좀 더 여유가 있다면 가까운 그리스의 섬인 코스섬을 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곳엔 스킨스쿠버를 가르쳐 주는 클럽도 있다.
시즌이 되면 시장은 항상 외국 관광객으로 붐빈다. 보드룸의 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많은 락카페와 디스코(디스코텍), 주점은 밤을 대표하는 빼놓을 수 없는 보드룸의 상징이 되었다.
보드룸의 옛날 이름은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인데 할리카르나소스는 그리스에서 넘어온 도리아(Doria)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도리아인과 이곳의 원주민인 카리아(Caria)인들은 별 어려움 없이 쉽게 융화됐다. 도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코스, 린도스, 카미루스, 로도스의 이아리수스, 크니도스 등과 더불어 6개 도시국가의 동맹의 일원이었던 할리카르나소스는 이웃의 이오니아(Ionia) 동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도리아 동맹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성스러운 무덤, 마소로움
할리카르나소스를 유명하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마소로스(Maussollos)의 무덤 마소로움(Mausoleum)일 것이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함께 터키 땅에 자리잡은 옛날 세계의 최고 건축물 중의 하나인 마소로움은 얼마나 웅장했던지 마소루스의 무덤을 뜻하는 마소레움은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 ‘영묘’라는 단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길이 38미터 폭 32미터 높이 45미터의 이 웅장한 건축물은 지금은 단지 그 기초만이 남아 있어 방문객에게 아쉬움을 준다.
이렇게 폐허만이 남은 이유 중의 하나는 지진에 의한 파괴도 있겠지만 로도스섬의 성 요한 기사단이 오스만제국의 공격을 대비해 성을 보강할 때 이 마소로움의 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조각상도 영국에서 가져가면서 지금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마소로움의 복원도를 보면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와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보드룸의 원형극장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수용인원은 약 1만3,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원형극장은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과 에페스의 극장이 주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존상태도 좋지 않다. 아니 너무 복원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복원 할 바에는 그냥 놔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
보드룸은 반도다. 보드룸의 주변에는 많은 휴양도시가 있다.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버로 얄르카박이다. 그 외에도 괼쿄이, 카드칼레시, 규뮤슈륙, 투르구트 레이스는 보드룸보다도 더 좋으면 좋았지 뒤떨어지지는 않는 아름다운 곳이다. 보드룸반도 전체가 휴양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드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발륵츠이다. 이 말은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보드룸성의 입구에 서있는 동상의 인물과 얽혀있다.
고대 할리카르나소스 이후로 보드룸은 아주 작은 어촌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오스만제국 사람이었던 할리카르나소스의 어부에 의해 전 터키에 사랑받는 장소로 떠올랐다.
그는 명문가문에 태어난 사람인데 자기 부인과 정을 통한 아버지를 살해한 죄목으로 이곳에 유배됐고, 이곳에서 어부 생활을 하면서 문학 활동을 벌였다. 뛰어난 문학가인 그가 쓴 글은 보드룸을 전 터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언젠간 그의 작품을 한글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의 작품을 한글로 옮기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의 터키어 실력을 한탄하며 그가 남긴 말을 읊으며 보드룸을 떠난다.
“아무 생각하지마요. 당신이 이곳에 왔던 것처럼 당신도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온갖 추억을 보드룸에 두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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