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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한국

[제주도] 삼도2동 제주 선교 첫 열매 제주성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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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성내교회 주보

 

현 교회모습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 초기 중심교회이자 제주 최초의 교회이다.

ㅁ1908년 이기풍목사가 세명의 신자들과 함께 향교골에서 기도회 시작

(제주 최초의 교회시작)

ㅁ일도리 중인문 안에 초가 여섯간을 매입하여 교회당을 사용.

ㅁ구 출신청을 매입하여 성내교회당으로 사용.

ㅁ교회 설립계를 제출(제주성내교회)

ㅁ구 출신청 앞에 목조 52평의 예배당 기공.

ㅁ영흥 야학교 69년제 보통과 설립.

ㅁ관인 중앙유치원 개원(제주 최초의 유치원)

ㅁ교회 구내에 노회경영 성경학교 교사의 기숙사를 신축

ㅁ교회 부흥으로 제주동부교회를 설립하고 성내교회는 제주서부교회로 개칭. 

1953년 성내교회(기장)과 성안교회(예장통합)이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성내교회 예배실

 

1921-73 교회 모습

 

1956년 춘계대부흥회 기념사진    (출처- http://md.churchok.com

 

 1974 건축 기공식

 

 제주 최초 교회당

 

 이기풍 목사 가족 사진

 

이기풍목사 공적비

 

 이기풍 목사 공적비

 

추모의 글

 

봉헌비

 

1953년 분영 시 현 성내교회인 제주 서부교회 시절의 당회서문 (예장 통합 성안교회는 제주 동부교회로 불러졌다)

 

교회 안 팽나무 설명

2003년 2월 10일 성내, 성안교회 희년 연합예배

1908년 제주도 최초의 선교사이자 제주 첫 개신교회인 성내교회를 세운 고 이기풍 목사의 막내딸 이사례 권사(80·영락교회)가 참석한 것. 이권사는 예배 마지막 순서에 이기풍 목사가 사용했던 강대상 뒤에 서서 “아버지가 이 강대상을 잡고 ‘나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감격해 했다.

1953년 장로교 분열 당시 성내교회와 성안교회로 나눠진 이래 별다른 교류가 없던 기장과 예장통합 소속 두 교회가 기장 희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리는 모습을 기쁜 모습으로 바라본 이권사는 “양 교단이 화기애애한 가운데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권사는 이어 “아버지가 순교한 이후 어머니께서는 자주 ‘아버지는 화해의 은사를 가진 분’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계셔서 오늘 이 현장에 함께 계셨다면 매우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권사는 성도 가정이나 교회, 노회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아버지께서 가시면 모든 분쟁이 해결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권사는 살아 생전 이기풍 목사가 자녀들에게 강조한 3가지 덕목으로 관용 백인(百忍) 겸손을 들었다.

“아버지는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야 하는 관용의 마음과 참는 것이 신자의 덕목이라며 백번이라도 인내하라며 백인(百忍)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낮추지 않는 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겸손을 강조했습니다”

이권사는 또한 고 이기풍 목사가 즐겨 외던 성경구절인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를 기억했다. 또한 “상대방이 너를 핍박하더라도 십자가 예수를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라. 네가 남을 미워하면 예수님도 널 미워할 것이며 네가 남을 사랑하면 예수님도 널 사랑한다. 항상 주님과 동행하라”는 내용의 어머니 고 윤함애 여사의 유언을 수첩에서 꺼내 읽어 예배 참석자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깨우쳐줬다. 이기풍 목사가 57세 때 낳은 막내딸인 이권사는 이목사의 4남2녀 중 유일한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