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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요르단

[요르단] 왕의대로에 있는 길하레셋, 아로엘 = 카락성




이스라엘이 에돔과 모압의 국경이 되는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써 실질적으로 광야 40년의 방랑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가나안 입주를 위해 요르단 고원지대로 난 소위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를 따라 북진해갔다. 이 ‘왕의 대로’는 ‘바닷길’(Via Maris)과 함께 민수기 20장 17절에도 언급되는 성서시대의 가장 중요한 2 개의 고속도로 중 하나이다. 이 ‘왕의 대로’변에는 고원지대에 있는 중요한 성읍들이 자리잡았다. 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지나간 ‘왕의 대로’변의 성읍들을 찾아가기 위해 먼저 동쪽으로 난 쉬운 사막길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왕의 대로’를 따라 올라오기로 했다. 요르단은 렌터카 이용도 가능하지만 택시도 하루에 100달러 정도면 기사와 함께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택시를 빌려 기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아침 일찍 출발한 나는 가장 남쪽에 있는 길하레셋((Kir-Hareseth)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 길하레셋은 암만에서 118㎞ 떨어져 있다. 사막으로 난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눈에 띌 만큼 험한 지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험한 계곡 사이로 멀리 길하레셋이 시야에 들어왔다.

길하레셋은 아르논 남쪽 28.4㎞,사해 동쪽 17.6㎞ 지점에 자리한 고대 모압의 수도로 현재의 케라크(Kerak)이다. 해발 933m 고원에 위치한 이곳은 주변의 언덕과 깊은 계곡들로 인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이사야의 신탁에서 두번 언급되며(사 16:7·11) 예레미야서에서도 두번 나온다(렘 48:31·36). 이사야 15장 1절에 나오는 길(Kir)도 길하레셋으로 본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공물을 거절하고 배반한 이곳을 치기 위해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연합하여 길하레셋을 공격하여 함락 직전까지 갔다. 이때 모압 왕은 성벽 위에서 자신의 맏아들을 자신들의 신에게 번제물로 드리며 전세를 만회하려 했다. 그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이스라엘 본국에 큰 사건이 생겨 포위를 풀고 귀국했다(왕하 3장).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채는 중세 십자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이중삼중으로 쌓여진 성채는 이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증언해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성안에는 막사와 감옥이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고지에 위치한 이 성의 가장 큰 문제는 식수였는데 우물은 예부터 성 밖에 있었다. 그래서 성읍 바로 밑에 수로로 추정되는 180m 정도의 터널이 있다. 1924년 발굴을 통해 모압인과 로마시대부터 중세 아랍시대의 도기들이 발견되었다.

1230m 고지에 있는 천혜의 성채인 길하레셋를 떠나 ‘왕의 대로’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달려 아르(Ar·민 21:28)를 답사한 후 계속해서 북진,아르논 골짜기에 이를수록 더욱 험한 지형을 달려야 했다. 마침내 아르논 골짜기에 이르자 이곳이 예부터 암몬과 모압의 경계가 되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계곡의 S자 길을 따라 올라가 다시 골짜기 북쪽에 있는 아로엘에 도착했다.

아로엘에 이르자 가장 먼저 양을 지키는 개가 이방인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겼는지 짖으며 달려들었다. 양치기 노인의 저지로 개를 피해 무사히 무너진 옛 성채에 오를 수 있었다. 아로엘은 요단 동편의 옛 모압과 암몬의 경계선이 되었던 아르논 강둑 바로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날 키르벳 아라이르(Khirbet Arair)에 위치하였다. 이 지역은 와디 무지브(성경의 아르논) 북쪽 경사면의 메데바와 케라크 사이의 교통로 동쪽으로 4㎞쯤 떨어져 있다. 이곳은 아르논 골짜기를 관통한(렘 48:19) ‘왕의 대로’를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세운 요새였음을 성채 위에서 아르논 골짜기를 바라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아로엘은 ‘가난한,내쫓긴’이란 뜻이 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12장 2절,신명기 2장:36절,열왕기하 10장 33절,예레미야 48장 19절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복한 후 르우벤 지파가 거주했던(대상 5:8) 이곳은 사사시대와 왕조시대에도 이스라엘이 통치하였다. 그러나 모압 메사의 성공적인 군사원정의 결과(BC 850년경)로 이곳은 모압 왕국에 병합되었다. 메사 비문에 따르면 메사 왕은 아르논에 대로를 만들고 아로엘을 건설하였다. 그후 이곳은 아시리아의 확장기 동안 다메섹이 몰락할 때까지 시리아의 소유지로 남아 있었다(BC 732년). 이곳에 대한 발굴작업은 1964∼66년 에밀리오 올라바리가 이끄는 예루살렘과 스페인센터 회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6개의 고고학층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헬라 도자기들이 많다는 것은 BC 3∼2세기에 새로운 거주지가 있었음이 증명됐다.

지금은 무너진 성채와 까마득한 아르논 골짜기만이 그 옛날 암몬을 지키는 요새였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로엘과 천혜의 요새였던 길하레셋의 무너진 성에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요새임을 깨닫게 한 하루였다.


왕의 대로

왕의 대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통신로이다. 왕의 대로는 북쪽의 고대 바산, 길르앗 및 암몬을 남쪽의 모압, 에돔, 바란 및 미디안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유대인, 기독교인 및 회교도 공동의 열조로서 요르단 북부, 중부 및 남부를 통과했던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에 이르는 여정에서 분명 이 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왕의 대로라는 이름은 민수기 20장 17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당시 모세는 요르단 남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이끌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동안 "왕의 대로"로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또한 왕의 대로는 소돔과 고모라 및 그 지역의 3개 도시, 즉 헤스본(히스반), 메다바(마다바) 및 키르 모압(카락)을 공격한 북방의 네 왕과 관련하여 이 보다 앞서 등장하는 이야기 (창세기 14:5~8)에서도 언급된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사로잡지만, 결국 아브라함이 이들을 뒤쫒아 쳐부순다.

오늘날 이 아름다운 길은 요르단 산악지대의 중심을 관통하며 구절양장을 이루는 포장도로가 되었다. 이 길은 요르단에서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들과 가장 중요한 고대 유적지의 일부를 통과한다.


카락은 해수면 900미터 높이의 고대 도시 성벽안에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7세기에 무타 전투, 야르무크 전투, 타바캇 파힐 전투 등 수 차례의 전략적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예언자 모하메드의 존경받는 동료이자 군사 지도자 중 많은 이들이 요르단에서 순교했으며, 그들의 무덤과 성지는 오늘날 신앙심 깊은 무슬림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카락에서 남쪽으로 25분 거리에 있는 알-마자르- 알-자누비 지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카락성은 아치형 석조 천장이 특징인 홀과 끝없는 통로로 이루어진 어둠의 미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성을 보고 있지만 아름다움보다는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성은 십자군 시대 군사 건축의 발달 정도를 잘 보옂는 인상적인 유적입니다.

카락시는 고대 모압광국의 수도였으며 로마시대에는 차락모바(Chracmoba)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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