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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터키

[터키] 데린구유 지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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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최대 3만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이다. 이 곳의 형성시기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히타이트 시대 즈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BC 6세기 경 문헌에 의하면 당시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BC 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는 셀레우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돼 있었으나, 그 이후는 로마에 충성을 바쳤으며 11세기까지 동로마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대상들의 교역로로 크게 융성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 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로마시대 이래 탄압을 받던 그리스도 교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흙을 파내고 동굴 속에 숨어 살았기 때문이다. 원뿔을 엎어 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이들의 거주 공간은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줬고, 동시에 데린구유라고 불리는 지하도시처럼 쉽게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러한 응회암 집의 입구는 지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옮길 수 있는 사다리나 밧줄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은둔한 사람들은 약 2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기독교인들이 만든 지하 교회만도 1천 개 정도에 이른다.이중 최고 오래된 것은 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들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회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보고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중요한 유산이다.

그 중 투어코스로 애용되는 동굴은 데린구유와 카이막카르. 120m까지 내려갈 수 있는 지하도시는 현재 지하 8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용인원이 많아지면서 지하 동굴은 더욱 넓고 깊숙해졌고, 내려갈수록 그 지형도 미로와 같이 복잡해졌다. 지하동굴 안에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이나,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행한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하수를 공급받는 곳도 있고, 산소를 공급받거나 환풍을 위한 시설도 마련돼 있다. 긴급 시 다른 지하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이어져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지하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 View POint- 데린구유 지하도시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데린구유(Derinkuyu)는 수천년의 역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 그렇기에 그 신비로움과 비밀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4,000년 전 히타이트 시대 때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이곳은 최대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총 20층에 달하는 대규모의 지하도시로 현재는 8층까지 개방한다. 수용인원이 많아지면서 지하 동굴은 더욱 넓고 깊숙해졌고 그 지형도 점점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지하동굴 안에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이나,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행한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 완전한 도시의 기능을 갖추었다. 게다가 긴급 상황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이어져 있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면서도 그 규모와 존재 자체가 믿기 어려울 정도.

:: 관람시간 11월~4월 08:30~17:30/ 5월~10월 08:00~18:00 입장료 10YTL


데린구유 신앙이 빚어낸 거대 지하도시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데린구유(Derinkuyu)는 수천년의 역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세상의 조명을 받았으며,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데린구유는 그 인근에 살던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 1960년대에 세상에 공표되기 전까지는 철저히 그 존재가 알았을 정도로 비밀리에 건설된 지하도시다.

최초로 이 지하도시를 건설한 것은 히타이트인이라고 알려졌으나 이후 1~3세기 300년에 달하는 기독교 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이 숨어들면서 지하 20층, 120m에 달하는 거대한 대도시가 형성됐다. 현재 데린구유의 인근 인구가 2000여명인데 당시 지하도시에 살던 인구가 총 3만여 명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총 70~80개의 환기구멍으로 지하 깊숙이까지 들어가도(관광객에게는 지하 8층까지만 개방) 전혀 호흡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과학적으로 설계됐다. 이 지하도시 안에는 침실, 우물, 식량저장고, 교회, 세례장, 학교, 묘지 등 인간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동굴 안에 집약돼 있다. 심지어 집단의 규율을 다스리기 위해 감옥과 같은 시설뿐만 아니라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한 처형장까지 존재했다. 전문가들의 추측에 의하면 동굴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고, 배출해 별다른 화장실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고 하니 당시 기독교인들의 독실한 신앙심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지하도시 (Under Ground City)

아나톨리아의 기독교인들은 1~3세기 동안 로마인들의 침입으로 땅속에 지하도시를 만들고 이곳에 피난하였다.

이 지하도시 중 유명한 것이 카이막클리, 데린구유, 오즈코낙인데 이것들은 8~10층 깊이로 석회암 하부를 뚫고 만든 지하도시로서 갑바도키아의 동굴마을과는 그 규모가 전혀 다르다. 


데린구유 (Derinkuyu)

"깊은우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데린구유는 지하 120m 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지하도시로서 현재는 8층까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데린구유는 인근에 살던 한 농부의 집 바닥이 움푹꺼져 들어 가면서 발견되었다.

이곳의 지하 1,2층은 방,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사육장, 성찬, 세례를 베풀던 장소, 신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묘지 등 도시 기능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초대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했던 현장인 십자가 형태의 교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지하동굴도시가 있다. 대표적인 지하동굴도시는 바로 데린쿠유(Derinkuyu)와 카이막크르(Kaymakili)다. 가파도키아에는 30여개가 넘는 지하 동굴도시가 있다. 이 지하동굴도시는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히타이트 제국때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수많은 지하동굴도시는 서로 지하로 수킬로미터에 걸쳐 연결되어있으며 각각의 도시는 많게는 수만명에서 적게는 수천명이 살 수 있는 대규모였다. 이 지하도시는 평상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식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지하도시에 비축해 두었다가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 지하도시로 숨어서 적군이 철수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이 지하도시들은 이교도인 이슬람교가 당시 기독교였던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던 시기에 광범위하게 건설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독교인들이 이 동굴도시를 처음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기독교인들이 발전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지하 도시마다 볼 수 있는 교회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리라.



괴레메의 석굴 계곡을 벗어나 남쪽으로 한시간 달리니 ‘깊은 웅덩이’라는 이름의 데린쿠유 마을이 나타났다. 나는 지금 지나가는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데린쿠유 지하 도시의 입구에 서 있다. 사람의 머리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속에 2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 도시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헬멧을 쓰고 손전등을 비추며, 허리를 숙이고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지하 세계의 탐험을 시작했다. 표시된 방향 이외의 길로는 절대로 들어서지 말라는 안내원의 거듭된 경고가 섬뜩하게 들렸다. 지하 6층, 7층, 8층, 입구로부터 지하 55m 지점에서 일단 통행이 차단되었다.

사람이 머리를 숙여 겨우 지나갈 만한 수많은 통로에 상하 좌우가 수십 갈래의 미로를 통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공간마다 거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방과 검게 그을린 부엌, 방앗간과 창고가 있고, 도시 중앙에 깊게 패인 심연의 공동 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 있다.

안내원이 곡물 창고 바닥에서 발견했다며 밀알을 집어 주자 내 손이 가늘게 떨린다. 풀 수 없는 사연들이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중앙지점에는 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듯한 회랑이 있고, 한쪽 구석에는 교회나 묘지 흔적도 있다. 그들은 낮에는 들에 나가 밀과 포도를 가꾸고 밤에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외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항상 충분한 식량과 물을 저장했고, 자기들만 아는 미로를 통해 바깥 세상과 연락했다. 미로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 문이 있어 비상시에는 이곳을 막아 방어를 한 흔적이 뚜렷하다. 수만 명이 불을 피워 빵을 구었는데도 그 연기는 신비한 통로를 통해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교체되어 들어오는 과학적인 건축 구조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바위를 뚫어 불가사의한 지하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언제부터 이 도시가 형성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것을 알려 주는 정확한 문헌도 현재로는 없다. 단지 6000∼7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부분적으로 이곳 바위 속에서 혈거 생활을 시작한 이래, 로마 초기에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뒤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를 하기 위한 장소로 또한 평범한 삶의 장소로 바위 속을 뚫고 또 뚫으며 거주 공간을 넓혀 갔으리라. 13세기에 칭기즈칸의 말발굽이 이곳까지 진격해 왔을 때, 그들 모두는 입구를 봉쇄한 지하 도시 속에서 완벽한 저항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지하 도시가 몇 층까지 내려가는지 아직 모른다. 어떤 이는 17∼18층은 족히 되리라고 했다. 그리고 인근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지하 도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발굴 중인 외즈코나크 지하 대도시의 규모는 6만 명을 수용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십개의 지하 도시를 연결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아마도 카파도키아 지하 암굴 도시의 실체는 21세기가 밝혀 내야 할 새로운 형태의 문명임에 틀림없다.

 

 




 

 

○개미굴 같은 지하도시 

파샤바 계곡을 나서 이번에는 괴레메 마을의 ‘야외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투파의 바위벽을 파내어 지은 암굴교회가 언덕과 계곡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 암굴 안에 들어서니 프레스코(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넣어 굳힌 벽화) 성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로마인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초기 기독교인들. 그들의 신앙적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고 순수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브셰히르를 떠나 니제 가는 길에는 지하도시를 지났다. 암굴교회나 버섯모양 투파와 달리 지하에 조성한 대규모의 거주공간인데 그 유래는 기원전 4000년 전(히타이트왕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데린구유라는 마을에 들렀다. 출입 굴은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낮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니 높이 3m에 수십 명이 들어갈 큰 공간도 있었다. 한마디로 개미굴을 연상시켰다. 좌우상하로 파들어간 미로로 연결된 이 지하도시는 무려 8개 층이나 됐다. 이곳은 이 마을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됐는데 환기구까지 갖춰 최장 6개월까지 거주가 가능한 시설과 규모라고 했다.

 

 

데린쿠유와 카이마르크의 지하도시는 종교 탄압을 피해 온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카파도키아에는 36개의 지하도시가 있으며 데린큐유는 가장 깊은 지하도시이여 카이마르크는 가장 큰 지하도시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1세기 초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와 카파도키아의 황야로 도망쳐왔다. 이곳에 도착한 기독교인들은 괴레메에서 40km 떨어진 데린쿠유에 정착했는데 이들은 이곳의 부드러운 화산 응회암이 파내기 쉽다는 점에 착안해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지하도시에는 교실, 교회, 침실, 주방, 식당, 식료품 창고, 천장 등이 있어 이들이 대규모의 공동생활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지하 85m 데린쿠유 지하도시, 침실, 주방, 식료창고, 교회 등 존재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약 85m 깊이의 지하 7~8층으로 이루어졌다.

지하도시는 1만5천개 이상의 통풍관을 통해 신선한 공기를 지하 밑바닥까지 공급했다. 공기순환을 위한 굴뚝, 우물, 물 저장소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 시설을 갖추었으며 지상으로 올라갈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죽은 자를 위한 일종의 무덤도 존재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에 피신해 온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은 움직이는 돌로 된 문을 1차 방어선으로 활용했다. 거대한 돌 바퀴로 만들어진 이 문들은 재빨리 외부의 침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고안됐으며 한 쪽 방향으로만 작동했다.

 

 

 

 

Let's explore the history of Derinkuyu, the biblical context, the life of early Christians, and the oppression of the Roman 
army in Cappadocia:

Let's delve deeper into the history of Derinkuyu Underground City:

Ancient Origins:
The exact origins of Derinkuyu Underground City are shrouded in mystery, as there are no historical records pinpointing 
its construction. However, it is believed to date back to ancient times, possibly as early as the Hittite Empire, 
which existed from around 1600 BCE to 1178 BCE. The Hittites were known for their advanced engineering skills, 
and it is plausible that they might have been the early creators of the underground structures in Cappadocia.

Development and Expansion:
Over the centuries, successive civilizations, including the Phrygians, Persians, Romans, Byzantines, and early Christians,
inhabited the Cappadocia region. Each civilization like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and expansion of the
underground cities, including Derinkuyu. The soft volcanic rock of Cappadocia, known as tuff, made it relatively easy to
carve out underground spaces, and these cities were continuously expanded and improved to serve various purposes.

Christian Era:
During the early Christian era, Cappadocia became an essential center for Christian communities. The region was home 
to several prominent church fathers, including Basil the Great, Gregory of Nyssa, and Gregory of Nazianzus. 
These theologian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shaping Christian theology and monasticism.

As Christianity spread throughout the Roman Empire, Christians faced periods of persecution,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Emperor Diocletian in the early 4th century. The underground cities of Cappadocia, including Derinkuyu, 
offered sanctuary for persecuted Christians. These underground complexes provided places of worship, communal living
spaces, and storage areas for food and supplies, ensuring the survival and continuity of the Christian faith during
tumultuous times.

Unique Features of Derinkuyu Underground City:
Derinkuyu is particularly remarkable for its extensive and well-rganized structure. It reaches a depth of about 60 meters
and consists of multiple levels, with interconnected tunnels, chambers, and staircases. The city could accommodate
a large population, with estimates ranging from tens of thousands to thousands of people. It is believed that several
underground cities in Cappadocia were connected through underground tunnels, providing escape routes and facilitating
communication between communities.

Abandonment and Rediscovery:
As the Roman Empire converted to Christianity and persecution ceased, the need for underground cities diminished. 
Over time, the inhabitants of Derinkuyu and other underground complexes gradually moved to above-ground settlements.
The underground cities were eventually abandoned, and their existence faded into obscurity.

Derinkuyu and other underground cities remained largely forgotten until modern times. In the 1960s, Derinkuyu was 
rediscovered when a local resident stumbled upon a hidden tunnel while renovating his house. Further exploration 
revealed the vast underground complex that we can visit today.

Present-Day Derinkuyu:
Today, Derinkuyu Underground City is a popular tourist attraction and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t offers visitors a 
fascinating glimpse into the ingenuity and resilience of the ancient civilizations that carved these remarkable 
subterranean spaces. Exploring the narrow passages, living quarters, chapels, and storage areas in Derinkuyu provides
an immersive experience, taking visitors back in time to an era of historical significance and religious devotion.

Let's explore the biblical history of Cappadocia in more detail:

Biblical References to Cappadocia:
Cappadocia is mentioned in two significant passages in the New Testament of the Bible. The first reference is in the Book
of Acts, specifically Acts 2:9, which describes the events of Pentecost. During Pentecost, the Holy Spirit descended upon
the apostles and other believers, empowering them to speak in different languages. Cappadocia is listed among the
places where people from various regions heard the apostles speaking in their own languages.

The second reference to Cappadocia is in the opening verse of the First Epistle of Peter (1 Peter 1:1). In this letter, 
the apostle Peter addresses the "elect," which refers to Christians, who are scattered throughout different regions, 
including Cappadocia, Pontus, Galatia, Asia, and Bithynia. Peter's letter is intended to encourage and strengthen early 
Christian communities in these regions.

Early Christianity in Cappadocia:
During the time of early Christianity, Cappadocia played a significant role as a center for the spread of the Christian faith.
The region was part of the Roman Empire, and Christianity began to take root there in the first centuries AD.
Early Christian communities faced both periods of persecution and times of relative tolerance, depending on the Roman
emperors' policies.

Cappadocia's unique landscape and the presence of natural caves and rock formations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Christian monasticism in the region. Many early Christians, seeking solitude and spiritual growth, retreated to the
rock-cut churches, dwellings, and monasteries carved into the soft volcanic rock. These cave complexes served
as places of worship, study, and communal living for monks and ascetics.

Influence of Early Christian Theologians:
Cappadocia also became known for producing influential Christian theologians and church fathers. Three of the most 
not able figures were Basil the Great, his brother Gregory of Nyssa, and their friend Gregory of Nazianzus.
These theologians, collectively known as the Cappadocian Fathers, played crucial roles in shaping early Christian
theology and defending orthodox Christian doctrines, particularly during the theological controversies of their time.

Legacy and Cultural Heritage:
The impact of early Christianity in Cappadocia is still evident today. The region is home to numerous well-preserved
rock-cut churches, monastic complexes, and frescoes dating back to the early Christian era. These historical and
cultural landmarks attract visitors from around the world and offer insights into the vibrant spiritual life of early
Christian communities in the region.

During the early Christian era, Christians faced significant persecution under the Roman Empire. The Roman authorities
viewed Christianity as a threat to the traditional Roman religious practices and the unity of the empire. As a result,
Christians were often subjected to harsh measures, including imprisonment, torture, and even death, for their refusal to
worship Roman gods and the emperor.


In regions like Cappadocia, which held a significant Christian population, the pressure and danger faced by believers 
were particularly acute. The rugged and remote landscape of Cappadocia provided both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for
early Christians. Here's a more detailed explanation of the life of early Christians in Cappadocia:

Challenges and Persecution:
The early Christian communities in Cappadocia faced constant surveillance and scrutiny by the Roman authorities. 
Romans suspected Christians of engaging in secret gatherings and plotting against the empire. Christians were labeled 
as atheists because they rejected the Roman gods, and they were often blamed for any misfortunes that befell the 
empire.

As a result of this persecution, Christians had to practice their faith discreetly and in secret. They met in hidden locations,
such as underground chambers and cave dwellings, to conduct their worship services and hold communal gatherings.
These secret meeting places were essential for their survival and the continuation of their faith.

The Role of Underground Cities:
Cappadocia's underground cities, such as Derinkuyu, played a crucial role in providing a safe retreat for Christians during
times of intense persecution. The underground spaces offered protection from Roman soldiers and other hostile forces
who were actively seeking to suppress the Christian communities.

Christians used these underground cities as places of refuge and worship. They were well-suited for clandestine
gatherings and provided a sense of security for believers seeking to escape persecution. The interconnected tunnels and
chambers allowed Christians to move and communicate covertly, making it difficult for Roman authorities to track their
activities.

Preserving Christian Faith and Community Life:
Despite the challenges and dangers they faced, early Christians in Cappadocia were resilient in preserving their faith and
community life. The underground cities became not only places of physical safety but also spaces where the Christian
community could come together, share their beliefs, and find support and encouragement from one another.

In these underground chambers, Christians continued to hold worship services, celebrate sacraments, and study 
scriptures. The gatherings allowed them to pass on their religious traditions and teachings to future generations, ensuring
the continuity of the Christian faith even amidst persecution.

Legacy and Inspiration:
The legacy of early Christians in Cappadocia is one of courage, dedication, and unwavering faith. Despite the threats 
they faced, they remained steadfast in their beliefs and found creative ways to practice their faith. Their commitment to 
their religious convictions, even in the face of grave danger, has inspired generations of Christians throughout history.

let's explore in detail the oppression of the Roman Army against Christians during the early Christian period:

Persecution of Christians by the Roman Empire:
During the early Christian era, the Roman Empire was a dominant force in the Mediterranean world. As the empire 
expanded, it encountered various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within its territories. The Roman authorities typically 
allowed religious pluralism and tolerated different gods and cults as long as they did not challenge the Roman state's 
authority.

However, Christians posed a unique challenge to the Roman religious and social order. The Roman polytheistic religion 
was deeply intertwined with the state, and the emperor was considered divine and worshipped as a god. Christians, 
on the other hand, firmly held to their monotheistic faith, worshiping one God and acknowledging Jesus Christ as their 
Lord and Savior.

Causes of Persecution:
Several factors contributed to the persecution of Christians by the Roman Empire:

Refusal to Worship Roman Gods and Emperor: Christians' refusal to participate in the traditional Roman religious 
practices, including offering sacrifices to Roman gods and worshiping the emperor, was seen as an act of defiance and 
disloyalty to the state.

Threat to Social Order: The Christian belief in the exclusive worship of one God challenged the social fabric of Roman 
society, where religion was tightly integrated into the social hierarchy. By rejecting the Roman gods and religious 
practices, Christians were perceived as disruptors of the social order.

Scapegoating and Blame: In times of social unrest or natural disasters, Christians were often scapegoated and blamed 
for the empire's problems. Their refusal to participate in the public religious rituals was seen as angering the gods and 
bringing divine wrath upon the empire.

Lack of Loyalty: As Christianity spread, some Roman officials viewed Christians as potentially disloyal to the state, 
suspecting that they prioritized their allegiance to Christ and the Christian community over loyalty to the emperor and 
the Roman Empire.

Forms of Persecution:
The Roman authorities employed various forms of persecution against Christians, aiming to suppress their faith and 
eradicate their influence:

Imprisonment: Christians were frequently arrested and imprisoned for their beliefs. Some were held as political prisoners,
while others faced incarceration for refusing to renounce their faith.

Torture: Christians were subjected to brutal and torturous methods to force them to renounce their faith. Torture was used
as a means of coercion and as a deterrent to others considering conversion to Christianity.

Martyrdom: Many Christians faced martyrdom for their refusal to recant their faith. They were often given the choice to 
worship the Roman gods and the emperor or face death. Some willingly chose martyrdom as an ultimate expression of 
their faith.

Social and Economic Exclusion: Christians faced social and economic marginalization. 
They were denied certain privileges and opportunities reserved for adherents of the Roman state religion.

Seeking Shelter in Underground Cities:
In response to the intense persecution, Christian communities sought shelter and safety in places like the underground 
cities of Cappadocia, including Derinkuyu. These underground complexes provided secure locations where Christians 
could practice their faith in secret, away from the prying eyes of Roman authorities.

The interconnected tunnels and chambers of the underground cities allowed Christians to move discreetly and 
communicate without being detected. These hidden spaces served as places of worship, study, and community 
gatherings, ensuring the preservation and continuation of the Christian faith despite the oppressive conditions.

The oppression faced by Christians under the Roman Empire highlights the incredible courage and resilience of early 
Christian communities. Despite the immense challenges and dangers they endured, they held steadfast to their beliefs, 
seeking refuge in the underground cities to protect their faith and maintain their worship of the one true God.

As you explore the underground cities of Cappadocia, may you reflect on the profound sacrifices made by early 
Christians to preserve their faith in the face of persecution. May their bravery and dedication inspire you on your 
pilgrimage, as you honor their memory and the enduring legacy of Christianity in the face of adversity.  Maranatha! Amen.

 

https://youtu.be/0hLI9rcMs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