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도(Miletus) 방문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성지순례 단체와 에베소 순례를 마치자 해질 때까지 4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에베소의 숙소를 알아놓은 뒤 택시를 타고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65㎞ 정도 떨어진 밀레도를 찾기로 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와 기오와 사모섬을 지나 에베소를 들리지 않고 곧바로 밀레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와 시험 속에서도 눈물과 겸손으로 가르치고 섬겼던 에베소를 잊지 못해 사람을 보내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청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가 떠난 후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 교회를 해칠까 염려스러우니 잘 관리하라고 부탁했다. 에베소 장로들은 다시는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기도할 때 모두 크게 울면서 입을 맞추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행 20:17∼38).
바울의 초청을 받은 에베소 장로들은 이틀이나 걸어서 밀레도에 왔지만 나는 에베소에서 택시로 1시간만에 도착했다.
밀레도는 마이안테르 강의 하구가 있는 라트미안만 남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다.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유명한 헬라의 항구 도시(행 20:15?17,딤후 4:20)였던 이곳에는 4개의 부두가 있었으며 인근 섬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교역에는 매우 유리한 입지 조건과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녔었다. 라트미안만의 지리적 상황은 마이안데르 강의 퇴적토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되었다. 고대에 이 만에는 라데 섬이 있어서 밀레도의 서쪽을 깎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만은 해안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만의 입구가 막혀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만은 내륙 호수로 변해버렸다. 밀레도의 부두들은 퇴적토로 메워졌고 마이안데르 강 줄기는 흐름이 바뀌었다. 그래서 밀레도의 폐허는 현재 해안에서 내륙으로 8㎞ 들어간 곳에 있다.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옛날에 항구였던 곳에 BC 2세기께 세워진 인공 항만 기념비의 기초가 남아 있다. 이런 변화로 후기 로마시대에는 밀레도에 배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변했으나 바울 시대에는 여전히 활기찬 항구였다.
밀레도에 가까이 가자 야외극장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야외극장 앞에는 수많은 돌조각들이 쌓여 있어 밀레도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에로스신과 아폴로신이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이 새겨진 돌조각이 눈에 띄었다. 야외극장에 올라가자 평지에 건설된 밀레도의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저 작은 도시였을 것으로 생각했던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다. 밀레도는 유명한 고대의 철학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데스 등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에는 대규모의 야외극장을 비롯하여 1세기의 이오니아식 상점터와 로마 때의 파우스티나 목욕탕 및 아고라,헬라 때의 상점터 사자석상 체육관 모눔멘탈(Monummental) 분수대 등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아르테미스신전 세라피스(Serapis)신전 델피신전 등 여러 신전터는 물론 시대의 흐름 속에 미가엘 교회와 회교 수도승 집회소 등이 일부 남아 있다.
그 옛날 바울과 에베소교회 장로들이 뜨거운 만남과 이별을 했던 밀레도의 수많은 유적 가운데 기독교 유적은 현재 미가엘 교회터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 땅에도 뿌려져 세계 선교에 앞장서는 나라가 되었다. 다시 한번 바울과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의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통해 이 민족이 세계 선교에 큰 힘이 되기를 기원하며 에베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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