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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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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 베를린(Berlin).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천년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베를린은 800년 밖에 안되는 비교적 젊은 도시이나 독일의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베를린의 역사는 13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퀠른(Coelln)과 베를린이라는 두 작은 도시가 합병하게 되고 1451년 프리드리히2세 후작이 이를 자신의 영지로 삼았다. 그 후 프리드리히3세가 1701년 스스로 '프로이센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1세'라 칭하고 베를린을 수도로 삼았다. 프로이센 즉, 독일제국이 성립된 이후, 1871년에 베를린이 독일제국의 공식수도가 되어 인구만 백만명이 넘는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할레 중부 독일 삭센안할트 주의 가장 큰 도시인 할레(Halle)에서 1685년 2월 23일에 태어나 영국에서 숨진 게오르그 프리드릭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은 J.S.Bach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9세 때 성 마리아교회 오르가니스트 F.W. 차호브 밑에서 작곡·연주의 기초를 배웠다. 1702년 아버지 희망에 따라 할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며 캘빈파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705년 오페라 《알미라》를 작곡하여 성공, 1906년 오페라의 고향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로마서 큰 성공을 한 헨델은 1710년 A. 스테파니 후임으로 하노버궁정 악장이 되어 독일로 돌아왔으나 그 해 휴가를 얻어 런던으로 떠났으며, 영국..
[독일] 라이프치히 옛 동독의 도시로 오래된 역사와 괴테, 라이프니츠, 니체 등 많은 문호들과 바하,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 말러와 막스 레거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음악가들이 수학하고 활동했던 도시다. 현재 라이프찌히(Leipzig)에서는 해마다 많은 세계적 박람회가 열리고 있으며 많은 출판사 등으로 상업적 번영의 재 도약을 창출하고 있다. 라이프찌히 중앙역은 유럽에서 가장 큰 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중심부로 들어가면 오페라 극장, 카알 마르크스 대학, 성 토마스 교회, 구 시청사 등이 한곳에 모두 모여있다. 오페라 극장 옆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이 카알 마르크스 대학(Karl Marx universität)으로 라이프니쯔, 니체 등의 철학자들을 배출한 대학이다. 문호 괴테가 자주 들렸다는 술집 아우어바흐스 켈러(Aue..
[영국] 웹워쓰 세인트안드레교회 올드 랙토리 촬영을 마친 일행은 사무엘이 목회했던 세인트 안드레 처치(St Andrew's Church)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제관 창문을 통해 보았을 때 꽤 멀어 보였던 교회는 막상 걸어보니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인트 안드레교회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었고, 오르막길은 좌우에 아름드리 가로수와 허리 높이의 가로등,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어우러진 호젓한 산책로 같았다. 13세기에 세워진 석조건축물에서는 중후함과 함께 오랜 풍상을 견디어낸 인내의 냄새가 풍겨났다. 예배당을 둘러친 안전망에 붙어있는 팻말과 건물 바로 옆에 즐비하게 늘어선 이끼 낀 묘비들이 풍기는 음산함은 이방인인 나에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3백 명쯤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예배실에는 서너 명의 인부들이 낡은 벽면을 뜯어내고 있었다...
[영국] 웹워쓰 올드렉토리 존 웨슬리의 고향 영국 링컨주에 있는 ‘웹워쓰’는 마치 마을 전체가 존 웨슬리의 박물관인양 이곳저곳에 그와 관련된 유적과 내용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영문으로 'Epworth'라고 쓰는 이 지명이 소리 내서 읽으면 읽을수록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왤까? 초기한국감리교회사에 종종 등장하는 발음하기도 뻑뻑한 '엡웟청년회'때문이었을까. 선교사들의 권유로 탄생한 '엡웟청년회'(Epworth League, 현 기독교대한감리회청년회)의 ‘엡웟’(Epworth)은 존 웨슬리의 출생지인 바로 이곳의 지명을 딴 것이 맞다. 그 뜻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남"이라하니 청년회의 이름으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엡워쓰에는 존 웨슬리의 생가이며, 아버지인 사무엘이 죽던 1735년까지 가족들이 살았던 올드 랙토리(Old Rectory)로..
[영국] 옥스포드 웨슬리센터 이곳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여행이 가능했을까. 옥스퍼드에서 웨슬리를 기념하기 위한 방을 마련한 링컨칼리지를 제외하곤, 방문지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안내팻말만이 그가 이곳에 존재했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이 자그마한 흔적을 준비한 손길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웨슬리의 유산은 추억의 뒤안길로 이미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웨슬리 센터(Wesely Centre), 영국전역에 흩어져 있던 웨슬리와 관련된 문서는 물론, 감리교에 대한 온갖 중요문서와 희귀자료를 수집해 활발히 연구를 펼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 연구소가 소중한 것은 매년 업데이트 된 감리교유산(Methodist Heritage)을 소개하는 책자를 펴내 웨슬리가 남긴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데 한 몫을 제대로 감당하고 ..
[영국] 옥스포드 세인트매리교회 존 웨슬리의 흔적을 좆아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하늘 한편에 노을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종착지로 선택한 곳은 세인트매리교회(St. Mary the Virgin). 옥스퍼드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회는 웨슬리가 설교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교회로 들어서는 입구 윗쪽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서있다. 교회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5시였지만,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30분 전까지 신청을 해야했기에 기념품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 한쪽 구석에 있는 전망대 가는 길, 윤기를 내고 있는 8백년 된 돌계단은 나선형의 원을 그리며 컴컴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매듭진 밧줄을 붙잡고, 한사람만 허락하는 좁다란 127개의 돌계..
[영국] 옥스포드 링컨칼리지 옥스퍼드에서 존 웨슬리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이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라면, 링컨칼리지는 그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더 깊은 학문적 연구와 성숙한 신앙으로 몰입해 들어갔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톰타워(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 정문) 우측 첫 사거리에서 하이스트리트로 한 블록 올라가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나타나는 링컨칼리지. 언뜻 보기에 크라이스트처치의 1/5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박한 규모의 대학이지만 작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감리교인인 우리에게는 의미 깊은 곳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장차 감리교라는 거목으로 세워질 메도디스트 운동의 씨앗을 품었던 ‘홀리클럽=신성회’(Holy Club)가 모였었기 때문이다. 링컨칼리지 사무실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존 웨슬리의 연구실로 안내할 사람을 찾았지만, 열쇠맡은 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