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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정보/이스라엘

[이스라엘] 나사렛 요셉 교회 = 성가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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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나자렛 요셉의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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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와 함께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장소가 있다. 수태고지 교회의 2층 북문으 로 나가서 약 150m 북쪽에 있는 요셉교회이다. 이 교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인 1914년 벤델린 힌터쿠서 신부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이 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위에 그대로 재건되었다. 벤델린 신부는 새로운 교회가 옛날의 교회와 동일 한 형태로 지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발견되어진 세 개의 반원형 제단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 곳을 기초석으로 이용하였다. 그리 하여 바로 위에다 옛 모습을 따라 현재의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중앙 제단의 벽화는 1952년 델라토르에 의해서 그려졌다. 중앙에 성가정의 모습, 오른쪽에는 요셉의 현몽, 그리고 왼쪽에는 요셉의 임종 장면이다. 또한 중앙 제단 쪽에 한 쌍의 돌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교회의 내부를 장식하 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은 그루버 스트라스버그의 작품이다. 그림의 내용들은 요셉, 그를 표본으로 삼았던 순례자들, 그 리고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와 클래어 성자의 모습들이다.
이 곳에서 발견된 것들이 ① 세례를 베풀던 제단과 ② 바위 동굴이다.

① 세례를 베풀던 제단
남쪽과 북쪽에 있는 계단 통로를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면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1895년에 발굴되어진 곳이다. 그 중앙에 길이, 넓이, 높이가 6피트 되는 욕조가 있다. 바위를 깍아서 만든 것이고 일곱 계단과 그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 리고 일곱 계단과 평행선을 따라 작은 수로가 있다. 이것 역시 조심스럽게 모자이크로 덮여있다. 이 수로는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욕조 안쪽으로 북서쪽 모서리에 20 인치 깊이의 둥근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있다. 그리고 그 정 면에 다듬지 않은 현무암 돌이 놓여 있는데, 석회암 바닥과 잘 조화를 이루도곡 놓여있고 모자이크 바닥과 수평을 유지하도록 놓 여져 있다. 이 돌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돌임이 분명하다. 모자이크 바닥은 검은 돌로 장식된 선에 의해서 흰돌로 장식된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장식들과 구조 형태를 근거로 E. 테스타 신부는 유대-기독교인들의 세례 장소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초대 교부 들의 가르침으로도 뒷받침된다. 350년경 무렵 시릴이 예루살렘에서 세례와 관련한 교리문답 설교 내용 가운데 보면, 천지 창조를 도우던 여섯 천사들, 곧 미카엘 천사장을 비롯한 여섯 천사들이 세례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도울 준비를 하고, 세례를 받을 사 람은 움푹패인 둥근 부분에 서있고,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돌 위에 사제가 서서 세례를 베푼다. 그리고 작은 수로는 요단강을 상징하는데, 요단강을 건너서 일곱 계단으로 이루어진 일곱 하늘을 올라가 약속의 땅에 이르른다. 그곳에 서 젖과 꿀을 음미하고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욕조의 바로 위쪽으로 바위 바닥에 아직도 남아있는 모자이크 바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수태고지 교회의 세례 욕조인 마아쉬 브레쉬트의 구조와 비슷하다. 이러한 구조들을 통해서 당시의 건물이 아주 화려하게 장식된 것들이었음을 알게된다.

② 바위 동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과 평행하게 또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은 좁은 통로를 따라서 바위 동굴로 이어진다 . 바위 동굴은 15 피트의 길이와 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에는 세 개의 곡물 창고용 웅덩이들이 있다. 그 중 두 개의 웅덩이 옆쪽 벽면에는 무거운 물건들을 지탱해주기 위해 만들었던 바위틈새가 있다. 아마도 기름, 포도주 항아리들을 두기 위한 것들이 었을 것이다. 그리고 램프를 두기 위해서 파놓은 바위틈들도 있다. 이 동굴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곡물 창고용 웅덩이와 물저장소가 만들어졌던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세례를 주던 제단이 만들어진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설명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테스타 신부의 의견을 따르면, 시릴이 언급했던 것처럼 세례를 받기 이전에 준 비를 위하여 사용되었던 방으로 이해한다. 옛날에도 초신자들에 대한 교육과 준비가 세례 전에 있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여러 시설의 형태와 초기 교부들의 글을 비교 연구하여서, 테스타 신부는 이곳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세례 장소로 활용되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③ 요셉의 집은 어디인가?
오늘날 나사렛을 찾는 많은 순례자들이 갖는 질문은 요셉의 집은 어디인가?하는 것이다. 성경은 물론 이에 대해서 명백한 해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를 가지고서도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업는 형편이다. 바가티 신부는 "요 셉 교회의 지하 구조물에서 과연 예수 시대에 사람들이 살았었던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초기의 발굴자들은 오직 건물 을 구조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다른 발굴품들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간과 하였다. 곡물 창고용 웅덩이에서 발견된 것들을 제대로 분류하지도 않은채 보관되어졌다. 오늘날 이러한 것들은 시대를 규정짓고 과거의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들로 간주된다 . 바가티 신부는 모든 것들이 땅 속에 묻혀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요셉 교회 북쪽에 대한 발굴을 1970년 8월에 실시한다. 그리 고 기대했던 것처럼 주전 1,000년경 무렵의 철기 시대로부터 헬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왔던 지층들을 확인하게 되었 을 뿐만 아니라, 비쟌틴, 아랍, 십자군 시대에 이르는 주거 흔적들을 찾아내었다. 즉, 요셉 교회 주변에서 예수 시대 당시에 사 람들이 살았엇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성가정의 위치에 대하여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기록은 갈릭의 감독 아르쿨프가 나사렛에서 이틀밤을 묵고 난 뒤에 남겨둔 6 70년의 순례기록이다. 그는 말하기를 "마을 한 복판에 우리의 주와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자라난 집 위에 세워진 교회가 있 었다"고 서술한다. 이 기록은 아봇 아담나우스가 편집한 기록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는 말하기를 "마을 한 복판에 있 는 교회는.... 두 개의 기둥과 아아치 위에 건설되었다. 그 안에는 샘이 있고 모든 사람들은 그 교회 안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 어다 먹었다"라고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샘은 '마리아의 샘'인데, 아르쿨프 시대에는 이 샘이 도시 바깥쪽에 있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요셉 교회는 나사렛 마을 한 복판에 있으며, 아아치로 만들어졌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샘이 문제가 되는데, 이것을 물웅덩이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 따라서 아르쿨프의 묘사와 일치하는 고고학 발굴 장소 라는 점에서 요셉의 집위에 요셉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증거는 없을까? 예수께서 살던 시대의 나사렛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방인이 전혀 살지 않았 던 순수한 유대 마을 이었다. 그래서 90년에 열렸던 야브네 회의 이후에 나사렛은 합비세스 가문(대상 24:15)의 제사장 도시가 된다. 이러한 사실은 4세기 말엽에 티베리야의 요세푸스(기독교 개종자)가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에게 유대인들이 나사렛에 교 회를 짓지 못하도록한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나사렛은 이방인들이 살지 않았던 순수한 유대인들만이 살았던 곳임 을 알게된다. 이것은 또한 에게리아가 400년경 무렵 성지의 모든 지역들을 순례하였지만 나사렛 만큼은 가지 않았었는지를 설명 해준다. 이곳에는 아마도 초기 기독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나사렛파" 기독교인들의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보 여진다. 제롬이 그들을 가르켜 말한 것처럼, "그들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다. 그들의 생활 양식은 유대인들과 같았고 그들의 신앙은 우리들과 같았다"라는 표현에서 유대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나사렛 주민들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꺼려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결론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서 예수께서 자라나신 그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가깝께 결론을 내릴수 있는 정답은 없다. 그러나 지난 2000여년의 세월 동안에 순례자들의 감동과 사람을 받아왔던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요셉교회이다. 이 곳에서 살았던 나사렛파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남겨놓은 그라피티들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의 일면을 우리에게 전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성장지에 대한 흔적과 자취를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