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파한의 조로아스터교 사원
사람머리 = 지혜, 황소의 몸 = 능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불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고 불은 광명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합니다. 아후루마즈다 신
참고 : 이란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없습니다. 모두들 앉아서 볼 일 봅니다.
에스파한 ESFAHAN
에스파한은 이란의 명작이며 고대 페르시아의 보석이자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이다. 에스파한의 이슬람 건물의 아름답고 푸른 모자이크 타일, 화려한 바자르와 멋진 다리는 몇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 에스파한을 산책하고, 바자르를 즐기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아름다운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만한 장소가 바로 에스파한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에스파한은 이맘 광장, 이맘 모스크,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 알리 카푸 궁정, 체헬 술탄 궁전 등 페르시아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에스파한의 웅장함은 16세기의 노래 ‘에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다’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바이런은 ‘에스파한을 보통의 인간성 회복인 아테네나 로마 같은 희귀한 장소로 삼을 때에는 좀 더 지역적인 특색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변두리에 산업이 크게 발달해 있고, 에스파한 또한 ‘세상의 절반’에 처한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공기 오염과 교통 혼잡이다.
역사 History
1500년대 초기까지 에스파한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1500년대 초에 사파비드 왕조의 첫 번째 지배자가 몽골인들을 쫓아냈다. 샤 아바스대왕으로 존경받는 ‘샤 아바스 1세’가 1587년에 정권을 잡았을 때, 그는 나라 안에서의 대적자로 그의 영향력을 확장시켰고, 페르시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오토만 투르크족을 쫓아냈다. 그 후로 조금 더 나라의 결속력이 생기고 외부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샤 아바스 1세는 에스파한을 위대한 도시 만들기에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의 시기는 1세기를 채 가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인들의 침략으로 급격히 쇠퇴화 되었고 수도 또한 쉬라즈로 옮겼다가 나중에는 테헤란으로 옮겨졌다.
아직도 에스파한은 샤 아바스의 비전의 힘과 숨결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가 지배할 때 에스파한은 가장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건축물, 예술, 카펫을 생산했다. 이스파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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