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건물과 그 역사
1355년에는 성가대석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성가대석의 북측에 있는 창, 탑의 아래층, 남북으로 넓힌 바형부 그리고 그 둥근 천정과 콘솔레(버팀대)는 1355년전에 된 것입니다. 15세기 말에 [에르쯔게비르게 (Erzgebirge)]산지에 은히 발견됨으로 라이프찌히는 부유한 경제도시가 됩니다. 이 결과로 라이프찌히 교회들은40년이내에 개축과 증축이 됩니다.
1482년에 토마스교회는 로마네스크양식의 중랑을 철거하고 새로운 후기 고딕 양식의 홀형 교회가 개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1496년에 제막식이 이루어졋습니다. 그 후는 1702년의 탑이 완성되기 까지 토마스교회의 건물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에 된 예배당과 증축부와 장당의 북측 전체에 만들어진 2개의 층계실이 19세기말에 제거되었습니다.
라이프찌히는 무역으로 번영이 되었기에 교회의 장식은 때로는 그 시대의 취미에 맞게 되었습니다. 대수리가 행해진 것은 1884~89년의 것입니다. 이 때에 바로크시대 특히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토마스교회에서 활동한 시대(1723~1750년)의 장식은 전부 제거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교회의 내부 장식은 신 고딕양식으로 되었습니다. 서측의 정문도 이 시대에 된 것입니다. 1961~64년의 개축에는 후기 고딕의 홀형 교회로서 성격이 강화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1990년에 동서독이 통일되고서 100년 이상을 그대로 보존한 교회의 종합 대수리의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 계획은 폭넓게 지지를 받아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서거 250주년에 해당하는 2000년 7월 28일까지 하기로 결정되엇으며, 여기에 수반해서 새로운 바흐 오르간의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 실현이 된 것은 유럽연합, 독일연방공화국, 작센주, 라이프찌히시에서 공공 조성금과 여기에 3년간에 천만마르크의 일반 기부금을 모은 '토마스교회 - 바흐 200년' 협회의 협찬사업이었습니다.
교회에 전체 길이는 76미터, 중랑의 길이는 50미터, 그 폭과 높이는 25미터와 18미터 입니다. 지붕의 경사는 예외적으로 급한 63도입니다. 내부에는 7면으로 되어 있으며 용마루의 높이는 45미터, 탑의 높이는 68미터 입니다.
예술품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세례대는 1614~1615년에 되테버(Franz Doteber)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인데 여기에 성서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가대석에 있는 측랑 제단은 15세기 무명의 거장에 의해서 만들어진 귀중한 작품인데 이 것은 원래 1968년에 폭파해체된 파울린교회9대학교회)에 있었던 것이다.
라이프찌히 시 교구 감옥의 역대 초상화는 성가대석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오랜된 것은 1614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구리로 된 묘 표식판의 아래에는 1950년부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 유해는 1894년에 요한니스교호의 묘지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후 1900년부터는 요한니스교회에 매장되어 있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교회가 파괴디어, 1949년 그의 유골이 토마스교회에 옮겨졌습니다.
설교단의 반대편에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은 뢰벨(Caspar Friedrich Lobel)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바흐시대의 몇개 남아 있지 않는 희소품중 하나입니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묘 표식판의 숫자로 최고 오래된 것은 기사 Harra의 것입니다.
원래 토마스교회는 단순한 장식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1889년 이 후 성가대석과 남측면에 색채의 유리창이 끼워졌습니다. 성가대석에 있는 창의 그림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세례, 부활과 엠마오 제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2000년 5월에는 유일하게 전쟁에 파손된 성가대석의 창문이 슈톡크하우센 (Hans-Gottfried von Stock-hausen)에 의해서 설계된 토마스창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남측의 창에 묘사되어 있는 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서) 제1차 세계대전의 전몰자 추도용의 창, 스웨덴 프리드리히 현제(왼쪽)와 필립 멜란흐톤(오른쪽)과 함께한 마르틴 루터,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리(1997년이후), 황제 빌헬름1세 입니다.
오르간과 악기
바흐시대의 오르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쪽 2층의 성가대석에 설치되어 있는 오르간은 1889년에 자우어(Wilhelm Sauer)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로만틴양식의 오르간은 원래 63음정으로 되어 있었는데 1908년에 88음으로 증가 시켰습니다. 1967년부터 홀의 북동쪽에 슈케(Alexander Schuke)의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것은 1999년에 퓌르슈텐봘데에 있는 성 마리아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바흐의 해 2000년에 성가대의 북측 즉 바흐 창문의 반대편에 새로운 바흐 오르간이 설치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오르간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며, 마르부르크의 게랄트 뵐 오르간 제작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4개의 마누알과 페달의 위에 설치되 61의 음정을 갖는 이 오르간의 음색은 18세기의 중부 독일의 오르간 구조에 맞추어 있습니다. 외부의 오먕은 바흐가 연주한 후에 파손된 라이프찌히대학교 교회의 오르간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토마스교회의 성구실에는 교회 소유의 바흐시대의 악기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진열품에는 바이올린 2개, 비올라 1개, 콘트라바스 1개, 첼로 1개, 팀파니 2개가 있습니다.
토마스교회 소년합창단과 지휘자
토마스교회 소년합창단에 대해서 최초의 문서기록은 1254년까지 소급되지만 합창단의 존재는 수도원과 같은 시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바흐의 시대에는 54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특히 매주 연주되는 모테트와 칸타타 그리고 매주일에 행해지는 예배에서 바흐의 작품을 보존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1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움과 2개의 수난곡중에 하나가 연주되고 있습니다.
바흐 이전 시대에 주목되는 지휘자로는 칼뷔시우스, 샤인, 쿠우나우 등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토마스교회의 지휘를 맡은 것은 1723년에서 1750년 7월 28일 즉 서거하는 날까지 입니다.
1992년 이후 빌러교수가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 안내 : 매주 일요일 09시 30분 (성찬식도 거행), 18시 (성찬식도 거행)
모테트와 오르간 연주 : 금요일 18시, 토요일 15시 (칸타타 연주)
토마스교회는 매일 일반에 공개 : 09시부터 18시까지
https://www.thomaskirche.org/r-index-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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